대상: 80대 초반의 할아버지

증세: 지난 3년 동안에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아오고 있었다. 신경 정신과에서는 약물만 처방해 주었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마음 속에 평생동안 묻어두고 억압해 온 감정들을 방출할 수가 없었다. 여기에다 2년 전에 불면증까지 첨가되어 내과 의사가 처방해 준 수면제를 정각에 먹지 않으면 수면제를 복용을 해도 밤에 잠을 편안하게 잘 수가 없었다.

접촉: 치료자에게 1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40대의 아드님의 권유로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음.

진단: 우울증, 불면증, 공포증

치료 기간: 아드님의 도움으로 6개월 간 치료 계약을 하고 1주일에 2회씩 (1회기에 2시간씩 1주일에 4시간) 치료 회기로 심리치료를 받게 됨. 한 달 후에 2012년 8월의 심한 여름 폭염 더위 때문에 1주일에 1회로 조정을 하게 되었음

치료 결과: 아래의 치료 과정은 할아버지가 치료를 시작한지 2달이 지나가면서 총 치료 시간 16시간의 치료에서 드러난 할아버지의 문제점 들을 분석한 것이다.여기에서 30년 동안 아들의 "발목 다침의 금기" 사항이 할아버지에 의해서 께어졌다. 할아버지는 치료를 시작 한 이후부터 잠을 편하게 자고 있음. 할아버지의 증세는 공포증이 새롭게 추가 되었음

 

치료의 과정:

 할아버지는 최근에 많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심리 치료를 받기를 잘했다고 스스로 평가를 했다. 그리고 그가 거의 매일 같이 가는 경로당에서 동료들에게 그가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게 되자 동료들이 어디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치료 비용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여러 명이 물어 본다고 아드님에게 치료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어 보았다고 했다. 아드님은 할아버지가 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평생 동안 돈에 시달려 온 분이기 때문에 치료 비용은 일체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치료 시작 때 치료자에게 했었고 아드님이 할아버지가 모르게 치료 비용을 지불을 했었다. 아드님은 할아버지에가 치료를 받기 전에 치료 비용을 이야기를 했드라면 돈 때문에 치료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드님은 할아버지에게 "치료 비용은 상당히 비쌈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랬드니 할아버지는 그래도 동료들이 물어 보는데 치료 비용을 알아야 대답을 해 줄 것이 아니냐? 라고 해서 "6개월간 치료 비용이 xxx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지난 주일 치료 회기 때 그가 이란에서 파견 노동자로 3년 동안 일을 하시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란에서 직물 공장에서 파견 노동자로 일을 할 시점에 우리나라에서 파견된 약 2000명의 근로자들 그 중에서 여성 근로자가 1500명 정도이고 남자 근로자가 약 500명 정도로써 할아버지는 그들을 노무 관리를 맡아서 일을 했다고 했다. 그 사람들의 신변 안전과 그리고 그들의 건강 등을 자연스럽게 맡아서 그들이 병들거나 몸이 불편하면 인근의 이란의 병원에 타로 태워다 주고 치료를 받고 난 다음에 차로 다시 숙소로 데리고 오는 일이었다고 했다. 병원에 가지만 그곳의 시설들이 워낙 후진적이어서 겨우 간단한 응급 치료를 하는 수준 이었다고 했다. 하루는 어떤 여성이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손과 발이 차갑고 숨이 막히는 증세로 할아버지가 놀래서 차로 그녀를 태워서 이란의 병원에 싣고 갔다고 했다. 그 여성은 그 병원에 들어서자 말자 증세는 깨끗하게 사라지고 멀정하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듯이 주사만 한데 맞고 돌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에 또 다른 여성이 비슷한 증세로 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병원에 들어가서 주사를 한데 맞고 증세가 사라져서 돌아왔다고 했다. 이후에 여러 명이 자주 그러한 증세로 할아버지가 병원에 데려다 주고 데려 오면서 그 이상한 증세에 할아버지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몇몇 특정 여성들만 그러한 증세가 자주 반복된다는 것을 알 게 되었고 그 증세는 병원에 들어서면 깨끗하게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그러한 증세를 가진 병이 무슨 병인지 늘 궁금했다고 털어 놓았다. 하루는 그 증세를 가진 여성을 다른 부서로 옮기고 그 여성이 소속된  새 부서장에게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해서 그 여성이 이상한 증세를 가지고 있으니 부서장이 신경을 좀 써 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고 그 부서장은 흔쾌히 허락을 하고 난 이후에 그 여성의 그러한 증세는 빈도 수가 줄어들었다고 했다.

 이후에 한국에 귀국해서 택시 운전을 하게 되면서 어느 날 택시에 젊은 한 여성과 그녀의 어머니가 택시를 탔는데 택시 안에서 딸이 갑가지 얼굴이 햐얗게 되고 손발이 차가워지면서 숨을 잘 쉬지 못하고 목이 졸리는 현상으로 옆에 탄 그녀의 어머니가 깜짝 놀래서 택시 운전수인 할아버지에게 "빨리 좀 인근 병원으로 가 주세요"라고 부탁을 했고 딸의 손과 발을 주물러 주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어쩔줄 몰라 했다. 할아버지는 이란에서 그러한 증세를 가진 여러 명의 여성들을 보았기 때문에 택시 승객으로 탄 그녀의 어머니에게 "손과 발을 물질러 주면 조금 있으면 괜찮을 것입니다."라고 안심을 시킬려고 했을 때 그 어머니는 "당신이 의사도 아니면서 웬 참견입니까?"라는 식으로 말을 해서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고 했다. 이후에 할아버지는 그 "증세"를 가진 병이 어떤 병일까? 병원에 가면 꼭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보아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지금까지 한번도 의사 선생님에게 그러한 질문을 해 본적이 없다고 우연하게 그러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치료자는 할아버지에게 그러한 증세를 가진 병을 "공황"장애라고 부른다고 소상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공황 장애는 순간적으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목이 졸리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현기증이 나고, 대 소변이 마렵거나 심장이 벌떡거리고 어지럽거나 혹은 극단적인 경우에는 오줌을 싸거나 기절로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공황 장애는 심리적인 것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핵심 원인이라고 더 붙여주었다. 여기에 더 붙여서 치료자는 할아버지에게 공포증을 설명해주었다. 뚜렷한 대상이 없는 공황 장애와는 달리 공포증은 대상에 두려움으로 생기는 증세는 그 대상에 직면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그 순간에 "공황"장애의 증세를 느끼게 된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예를 들어서 비행 공포증은 비행기를 타게 되면 그 비행기가 혹시 폭발하거나 사고가 나는 것이 아닌가 두려움으로 공황 증세를 느끼게 되고 심하면 비행기를 타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공포증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숨이 막히고 질식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공황 증세를 느끼게 된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한 공포증은 수 없이 많은데 극장, 시장과 같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가면 혹시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탈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극장, 시장에 갈 수 없는 사람이 광장 공포증(시장 공포증), 높은 고층 건물에 올라가지 못하는 고공 공포증, 특정 동물들에 대한 공포증으로 뱀 공포증으로 야외에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을 해주었다.할아버지는 이러한 증세를 가진 병을 "공황장애"라고 부르고 그러한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이 그 대상을 직면하게 되는 그 순간에 공포증을 느낄 때 그것이 "공황 공포증"이 된다고 설명을 했을 때 여러 번 그 장애의 이름을 다시 되풀이 해서 물어 보았고 치료자는 정확한 발음으로 "공황" 과 "공황 공포증"으로 대답을 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할아버지의 아드님이 지금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공포증"임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드님은 부인과 어머니가 아파트 도어 문에 비밀 번호를 누가 누르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고 밖을 쳐다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는 말을 40대 초반의 아드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몇 일간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그리고 해외 출장으로 자주 비행기를 타는데 아주 심하지는 않지만 비행기가 흔들리면 혹시 비행기가 폭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얼굴이 하얗게 되고 숨이 막혀서 공포에 떠는 "비행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설명을 해 주었다. 아드님이 치료자에게 처음에 위의 두 개의 공포증 때문에 치료를 받으러 왔고 지금 1년 째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아드님의 공포증의 원인이 무엇인가? 궁금해 했다. 치료자는 아드님의 경우에는 중학교 2학년 때 지뢰를 밟아서 발목이 절단된 사고와 관계가 있고 그리고 어린 시절에 따뜻하게 부모님의 보호와 관심을 받지 못한 것도 있고 그리고 대학 시절에 매형네 가족과 같이 10년 동안 살면서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소외되어 인정을 받지 못한 것들이 관계되어 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드님에 대한 치료 과정을 상세하게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할아버지는 자신이 지금까지 아드님에게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을 했다. 아드님은 막내로써 그가 성장을 할 당시에는 택시 운전수로 겨우 끼니만 이어가는 어려운 시기였고 그리고 그 이전에는 베트남에서 3년 동안 그리고 이란에서 3년 동안 해외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막내 인 아드님에게 관심과 사랑을 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여기에 더 붙여서 할아버지는 아드님이 중학교 2학년 때 발목 지뢰를 밟아서 발목이 잘린 것에 대해서 지금까지 가족의 금기로써 발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자는 할아버지에게 그러한 가족 내의 금기가 심리적인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고 설명을 했다. 가족 내에서 금기 사항은 온 가족 구성원들에게 마음의 상처로써 그러한 이야기를 마음 속에 억압을 하게 되고 그것이 마음 속에서 분노, 미움, 적대 감정 등으로 남아서 이후에 다른 형태의 증세로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그가 금기시 하게 된 것은 발목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아들이 가슴 아파할 것 같아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일 뿐 마음 속에는 항상 아들에게 죄를 지었다는 죄의식 때문에 한번도 그것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가픔 아파 했다. 그는 사고 직후에 아들이 병원에 입원한 병실에서 아들에게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차라리 내 발목을 가져가지 않고 어린 아들의 발목을 가져갔습니까?"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고 기억을 했다. 그러한 그 아들은 한번도 아버지의 그러한 말을 들었다는 기억이 없다고 그의 치료 회기에서 이야기를 했다. 아드님은 늘 치료자에게 그의 발목에 대한 이야기를 다리를 다친 그 이후에는 가족들에게 금기 사항이 되었고 가족 구성원들이 그에게 다리를 다친 것에 대해서 위로나 격려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고 분노했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아버지가 국가를 상대로 자신이 발목을 다친 것을 소송을 제기를 했지만 패소를 한 것을 보고 부모님이 그가 다친 발목에 신경을 써주지는 않고 배상금에만 눈이 어두웠다고 격렬하게 분노했다.

 할아버지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한 것에 대해서 소상하게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는 아들이 발목을 다친 것을 국가가 지뢰를 잘못 관리했기 때문에 국가가 배상을 해야 한다고 소송을 걸었는데 그 담당 변호사가 너무 무성의 했고 그리고 그 당시에 군사 정권으로 비슷한 소송을 한 사람들이 모두 패소했다고 분노했다. 특히 그 변호사는 법정에 나오지도 않았다고 노발대발했다. 그 후에 포기를 하고 세월이 지나가면서 그가 그 소송 서류를 보관해두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그 변호사를 찾아 보았으나 변호사 사무실은 사라지고 그 변호사 이름도 기억하지 못해서 세월 속에 묻혀 지나갔다고 했다. 만약에 그 소송 서류를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이라고 다시 소송을 내고 싶다고 했다. 그 소송을 한 근본적 이유는 아들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그가 조금이라고 배상을 받아서 아들을 위해서 사용하고 싶었다고 했다. 아들의 발목 사건 이후에는 할아버지는 한번도 동료들이 가자로 조르는 임진강 주변에는 다시는 찾지 않았다고 했다. 그곳에 가면 아들의 발목 사건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고통스럽고 아들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드님의 마음 속에는 부모님은 발목에 대한 위로, 격려, 용기를 주는 말을 없고 배상금에만 눈이 어두웠다는 아드님의 생각과 할아버지의 마음 사이에는 너무나 큰 캡이 존재함을 지적하면서 그러한 서로의 오해를 대화를 해야 풀리고 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꼭 그 문제를 풀어야 함을 강조를 했다.

 할아버지는 늘 아들이 발목 때문에 의족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면서 마음 속에 괴로워했는지를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 속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아들에게 이야기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러한 점을 지적을 했다. 아드님은 아버지가 지금까지 한번도 그에게 다리를 다친 그에게 격려나 위로, 그리고 용기를 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늘 분노했다는 말을 할아버지에게 분명하게 전달을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몇 주일 전에 할아버지가 치료자에게 "이제 죽음을 맞이해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한 것을 상기 시키면서 할아버지에게 "몇주일 전에 할아버지가 나에게 어떻게 죽음을 준비를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지 않습니까?" 할아버지가 아드님에게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해서 마음 속에서 오해, 갈등 등을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마음 속에 아드님에 대해서 지금 아드님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아들에게 무관심하고 식구들과 차별을 하고 다친 발에 대해서 금기로 한 것이 아니고 실제 할아버지의 마음 속에서는 아들에게 늘 미안하고 옆에서 지켜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장래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드님에게 이야기를 해서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가로 막고 있는 장벽을 헐어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를 했다. 아들과 의사 소통을 해야 함을 강조 했다. 할아버지에게 다시 치료자는 할아버지가 처음 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 "아들과 소통을 하는 방법을 배울 수가 있을 것"이라는 주문을 한 것의 회상 시켰다. 고로 할 수 있는 한 아들과 지금까지 못다한 이야기를 해서 서로의 오해를 이야기 하고 서로가 마음 속에 썹썹함 기대감 갈등 들을 모두 이야기를 해야 함을 강조를 했다. 할아버지는 아들이 사업 관계로 너무 바쁘고 서로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치료자는 저절로 그러한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서로 이야기를 할 시간을 만들어야 함을 강조 했다.

 그 다음 주일의 치료 회기에서 할아버지는 치료자와 치료 회기를 가진 그 주일의 일요일에 아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다행이도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서 발목을 다친 것에 대한 사과를 했다고 했다. 아드님이 치료 회기에 와서 아버지의 단순한 그러한 강압적인 사과에 분노했다고 노발대발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문제도 정리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아드님의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에 불쾌하게 생각을 한다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아드님에게 할아버지는 지금 가장 시급한 그의 문제가 살아 있는 가족들과 갈등을 풀어서 마음 속에 쌓이 한을 빨리 풀어내는 것이 우선임음 강조 했다. 할아버지가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로 그가 하루 빨리 그의 마음 속에 갇힌 갈등과 오해를 빨리 풀어내야 마음이 안정이 되고 정리가 되면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하나씩 정리가 되는 것임을 이야기를 했다. 아드님에게 할아버지가 30년 동안 가족의 금기를 깬 것은 엄청난 용기임을 알 게 했다. 사실 아드님도 발목을 다친 금기는 그가 스스로 깰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인정을 했다. 그는 그가 그러한 금기를 이야기를 하게 되면 할아버지가 마음을 다치거나 놀래거나 해서 혹시라고 노령에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그 자신이 가족의 금기를 깰 용기는 없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아드님과 할아버지 둘 다에게 30년 동안의 금기는 한번으로 얼음이 녹듯이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를 했다. 금기 상황이 깨어졌으니 이제부터 그러한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고 서로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 오해가 풀리고 소통이 될 것임을 강조 했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 진전은 할아버지가 치료자의 분석으로 나타난 그의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소통이 너무 빈약함을 절감을 한 것이었다. 치료자는 할아버지와 사위 그리고 며느님과의 소통은 활발한데 비해서 할아버지와 아드님 그리고 할아버지와 부인인 할머니와 관계는 의사 소통의 단절을 그 스스로도 시인을 했다. 치료자는 의사 소통의 단절이 오해와 갈등의 근원임을 이야기를 하면서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해야 서로의 관계가 불편하지 않고 껄끄러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을 이야기를 했다. 아드님은 할아버지가 지난 주일에 그의 부인(할머니)과 의사 소통을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고 흐뭇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택시 운전을 하기 위해서 울산으로 택시(그 당시에 포니 승용차)를 인수하러 가면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대동하고 울산에서 승용차를 인수해서 타고 오다가 울진에서 그의 부인인 할머니가 울진에서 유명한 대 게( 큰 꽃 게)를 먹고 싶다고 했을 때 돈이 너무 비싸다고 작은 게를 먹고 온 것을 부부가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할머니가 "택시 운전수들이 돈에 너무 인색함"을 지적을 하면서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을 보고 이제 우리 가족들 사이에 조금씩 대화의 물꼬가 터인다고 아드님이 그의 치료 회기 시간에 이야기를 했었다. 할아버지는 치료자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 그의 아드님이 그에게 "우리 부부 문제에 신경쓰지 마시고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문제에만 신경을 쓰면 우리 부부는 더 편안해 질 수 있습니다"라고 한 말에 공감을 해서 이제부터는 그의 부인과 이야기를 해야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또한 부인과의 꽃게에 대한 이야기를 더붙이면서 사실 그 때 빚을 내서 차를 사가지고 오면서 그 당시에 그에게는 엄청한 가격인 대 게(꽃 게) 값을 지불할 용기가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대신에 그가 한창 전성기였던 한강 모래와 자갈 사업 때 돈을 많이 벌어서 부인인 할머니에게 그 당시에 엄청나게 비싼 "롤렉스 시계"와 "루비똥 핸드백"을 사 준 것을 회상을 했다.

 할아버지는 며칠 전에 안철수 대선 출마자가 한 이야기를 신문에서 보았다고 그가 한 이야기를 했다. 세칭 유명인사들의 자서선에서 보는 영웅담의 이야기들을 성공한 후에 미화되어 포장된 것이어서 그러한 것을 분별해서 읽어야 함을 강조하는 말에 감명을 받았다고했다. 할아버지는 치료자가 몇 주일 전에 그에게 할아버지의 삶은 재 평가를 해서 스스로 좋은 점과 잘못된 점들을 평가하고 정리를 해서 삶을 정리를 해야함을 회상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너무 인색하게 평가를 해서 50점을 준 것은 잘못된 것임을 인정을 한다고 했다. 그가 살아온 삶을 치료자의 말을 고려해 보았을 때 그가 이란에서 2000명의 생명을 구했다는 치료자의 평가를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가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파란만장한 삶에서 살아남은 그의 삶의 역사를 이제는 되돌아보면서 살아온 자신의 삶이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된다고 그의 최근의 생각의 변화를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울러 할아버지가 가진 증세인 우울증, 불면증에 한가지가 더 붙여지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공포증을 가지고 있음에 분명했다. 할아버지는 끊임없이 자신의 건강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있고 너무 자주 병원에 출입을 하고 있다는 말을 치료 초기부터 아드님으로부터 늘 듣던 이야기였다. 그러나 치료자는 그것을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노령으로 몸에 아픈데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으나 몇 주일 전부터 할아버지가 "공황 공포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 아드님의 증세가 공포증이고 또 세 번째 딸이 공포증으로 조만간에 치료를 받으러 올 것이라는 아드님의 이야기를 연결해 볼 때 죽음에 대한 공포증이 있음을 알 게 되었다. 그러나 치료자는 할아버지에게 그가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 더욱 더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신경을 쓸 것이고 공포증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몇 년 전에 의사에 의해서 내려진 진단인 우울증이고 그리고 불면증을 그가 잘 알고 있고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그가 감당을 하기 힘들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료자는 할아버지가 자연스럽게 아들의 발목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을 할아버지 치료에서 한 단계 전진으로 보았다. 할아버지의 마음 속에 가장 시급한 문제가 아들의 발목에 금기 사항을 깨는 것이고 아들과 소통으로 서로의 오해가 풀리게 되면 아들과의 갈등이 감소하고 아들에 대한 과도한 신경 쓰임(할아버지는 아들 내외의 부부 관계에 지나치게 예민했고 아들의 사업의 장래에 너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이 감소하게 되어 할아버지의 마음 속에 있는 크다란 짐을 내려 놓게 될 것임을 확신을 했다.

 할아버지는 지난 주일에 치료 회기를 마치고 나가면서 "내가 이곳에 치료를 받으러 오길 참 잘 했습니다" "여기에 와서 이야기를 하면 시간이 언제 가는지를 모르겠습니다. 2시간이 마치 몇 분이 지나가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치료실 문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