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80대 초반의 할아버지

증세: 지난 3년 동안에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아오고 있었다. 신경 정신과에서는 약물만 처방해 주었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마음 속에 평생동안 묻어두고 억압해 온 감정들을 방출할 수가 없었다. 여기에다 2년 전에 불면증까지 첨가되어 내과 의사가 처방해 준 수면제를 정각에 먹지 않으면 수면제를 복용을 해도 밤에 잠을 편안하게 잘 수가 없었다.

접촉: 치료자에게 1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40대의 아드님의 권유로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음.

진단: 우울증, 불면증

치료 기간: 아드님의 도움으로 6개월 간 치료 계약을 하고 1주일에 2회씩 (1회기에 2시간씩 1주일에 4시간) 치료 회기로 심리치료를 받게 됨

치료 결과: 아래의 치료 과정은 할아버지가 치료를 시작한지 10시간의 치료에서 드러난 할아버지의 문제점들을 분석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할아버지는 정해진 치료 시간에 정각에 도착을 했다. 치료를 받는 자세는 처음이나 이후에나 언제나 한결 같았다. 최근에는 하루에 5시간 정도 잠을 잘 잔다고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가 최근에 잠을 잘 자는 것은 수면제를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리치료를받를 받기 직전에 아드님과 4시간 이야기를 털어 놓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처음으로 의사 소통의 문이 열리면서 대화를 시작한 그 날은 잠을 잘 잤다고 한 이야기를 아드님으로부터 들었고 그리고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한 이후에는 지금까지 단 하루만 빼고 잠을 잘 자고 있다고 했다. 아드님은 심리치료 덕분에 잠을 잘 잔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할아버지는 아직도 심리치료 때문에 잠을 잘 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저께 6.25 때 북한에서 피난을 온 유일한 사촌 누나가 95세로 세상을 떠났고 그 누나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온 그날 밤에는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밤에 뜬 눈으로 세웠다고 고통스러워 했다. 할아버지는 남한에 내려온 유일한 친척 누나가 만년에서는 노인 병원에서 병으로 반쯤 누워서 지내는 것을 보고 가픔 아파했고 자신도 나이 많으면 누나처럼 "살아있는 송장"처럼 보내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고 아드님이 귀뜸을 해 주었다. 그 누나의 죽음을 보고 온 그날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치료를 받은 그 다음날부터 다시 잠은 잘 자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잠을 잘 자고 있는 것은 수면제 약물을 최근에 다른 약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한강에서 모래와 자갈 채취 사업을 할 때가 제일 돈을 많이 벌었던 시절로 그 때는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고 그리고 가정부를 2사람이나 두었다고 자랑을 했다. 그러나 그 사업이 금지되는 바람에 헐값으로 바지 선(모래, 자갈 운반선)를 처분하고 외국에 노동자로 나갔다가 몇 년 후에 들어와 보니 그 바지 선의 가격이 몇 천만원에 팔았던 것이 몇 억대의 가격으로 상승해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할아버지는 모래, 자갈 채취를 하던 1년 6개월의 세월이 그의 삶에서 가장 풍족했던 시기로 기억을 했다. 이후에 생활은 궁핍했다고 고통스러움을 털어 놓았다.

 그는 베트남 전이 한창이던 시점에 미군 부대 소속 민간인 자격으로 베트남에서 3년 동안 보냈던 시절을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두 사람이 베트남으로 갔는데 미군 부대 안에서 민간인 기술자로 파견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베트남에 도착을 해서 미군 부대 안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고 그가 그곳에서 생활을 하면서 겪는 이야기들을 술술 거침없이 이야기를 했다.

 하루는 미군의 직속 메니저가 미군 부대에서 헬리콥터로 자신을 태우고 어떤 미군 부대에 가게 되었다고 연락을 전해주었다.그는 영문도 모르고 그 미군 헬리곱터에 타고 갔는데 그곳에 가서 보니 에어콘을 고치라는 것이었고 그는 에어콘 기술자가 아니었고 에어콘을 고쳐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부대장이 고치라고 했기 때문에 그는 하루 종일 에어콘을 요모조모 띁어보면서 "소 뒷 발에 쥐잡기"로 만지다가 빨간 스위치를 연결해 보고 나서 에어콘이 가동이 되는 것을 보고 시치미를 떼고 고친 것처럼 작동을 시켰더니 그 미군 부대의 부대장이 최고라고 칭찬을 해주었고 그리고 헬기로 다시 그가 근무지로 되돌아와서 그의 메니저 한데서 에어콘 고장을 고쳤다고 최고라는 칭찬을 들었던 시절을 이야기를 하면서 파안대소를 했다. 얼마 후에 그는 또 그 부대에서 헬기로 그를 다시 소환을 해서 이번에는 고장한 냉장고를 고쳐달라고 해서 아무리 조작을 해도 냉장고를 고칠 수가 없어서 영어로 된 냉장고 설명서를 뒤져 보다가 냉장고의 부품이 고장이 났으니 그 부품을 주문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주고 되돌아온 이야기들을 했다. 사실 그는 영어를 몇 마디밖에 할 수 없었고 영어로 된 설명서를 읽을 수 없었지만 눈치와 고치로 그 상황들을 모면을 했다고 그 당시를 이야기를 했다. 이후에 그는 냉장고, 에어콘 등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서울에 가족들 한데 편지를 해서 청계천에 가서 냉장고, 에어콘의 수리를 하는 책을 몇권 사 달라고 요구를 해서 그 책을 보면서 약간의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 당시에 자신의 메니저로부터 신임을 얻어서 그당시에 월급이 300달러 정도 되었는데 그는 다른 수당들을 합쳐서 약 1000달러를 월급으로 받았다고 자랑을 했다. 베트남에서 3년 동안 지내면서 그는 미군 부대 안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위험은 없었다고 했다. 얼마 후에 어떤 미국인 감사관이 그에게 감사를 하면서 돈을 빼돌린 것이 없는가? 부정을 한 것이 없는가?를 조사를 했으나 그는 정직하게 근무를 했고 조그만 돈에도 손을 대지 않았서 정직하게 일한 것이 밝혀지면서 더욱 더 신임을 얻게 되었고 그 당시에 그의 메니저는 부정부패로 감사에 걸려서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갔다고 이야기를 털어 놓으면서 그대로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남의 돈에 욕심을 내지 않고 정직하게 일을 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이후에 미군의 베트남 철수로 그가 다시 한국으로 무사히 되돌아왔다고 과거의 기억들을 회상을 했다.

 치료자는 할아버지가 파안대소를 하면서 그 당시에 위기 상황들을 눈치, 고치로 극복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 놓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행복하게 웃는 모습에서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긴장이 자연스럽게 헤소되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치료자는 할아버지의 과거의 이야기들을 들어주면서 할아버지의 환경 적응 능력을 높이 평가해 주었다. 그가 6.25 사변에서 남한으로 혼자서 월남을 했고 이후에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반공 포로로 남았고 그리고 석방 이후에 한국군에 입대를 해서 서울에서 군대 생활을 했고 제대를 한 후에 미군 부대에 근무를 하면서 결혼 직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환경 적응 능력임을 지적을 해주었다. 다른 사람들보더 환경에 적응 능력이 뛰어났음을 직감으로 분석을 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 그는 이란에 파견 근로자로 갔던 3년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는 정부에서 모집하는 외국 파견 근로자로 선발이 되어 이란에서 방직 공장을 하는 한국인 경영자 밑에서 3년 동안 일을 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털어 놓았다. 출발 전에 그의 여권이 나오지 않아서 그 지역 경찰서에 가서 물어보니 신원 조회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고 이미 비행기 표는 나와 있는데 여권에 신원 조회가 완료되지 않아서 여권 발급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그 당시에 한국 은행에 근무하던 친척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 지역 경찰서에서는 할아버지가 반공 포로였고 그리고 신원이 확실하지 않아서 여권의 신원 조회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그 한국 은행에 다니는 친척이 그의 상관에게 이야기를 해서 그 지역 경찰 서장에게 반공포로로 나온 분을 그렇게 대접할 수 있느냐? 로 호통을 쳐서 당장 그의 신원 조회를 해주어서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 당시에 그와 같이 한국에서 파견되어간 노동자들이 남자가 약 500명 여자가 약 1500명로 도합 2000명 정도가 이란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사장의 신임을 얻어서 상당히 높은 관리직에서 일을 했다고 했다.그는 주로 직원들의 바깥 출입과 직원들의 관리 그리고 생활 필수품의 공급 등의 업무를 맡고 있어서 힘든 일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잘 지내면서 사장의 신임을 얻어서 사장이 할아버지에게 직접적으로 한국에 가서 더 많은 노동자들을 모집해서 이란으로 데리고 오면 아파트도 한 개 사주겠다고 약속을 받았고 그리고 한국에 나와서 노동자를 모집하려고 준비를 하던 시점에서 이란에서 팔레비 왕이 축출되고 호메니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란은 무법천지로 변하게 되었다고 그 당시를 회고를 했다.

 할아버지는 난감했다. 6.25 사변에서 혼란스러움과 북한에 살 때 인민군들의 무법천지를 경험한 할아버지는 다시 한번 혼란과 두려움에 빠졌다고 했다. 이란에서 직물 공장의 사장은 미국으로 도망을 가 버리고 아무도 약 2000여명의 직원들을 돌보아줄 사람이 없었다. 그는 직원들을 안정 시키고 정부에서 빨리 한국인들의 보호와 철수를 해 줄 것을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고 대사관에서도 직원들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탈출을 할 수 있는 경로들을 알아 보았으나 이란의 혁명 정부는 공산주의처럼 외국인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외국인에 대해서 좋지 않는 시각으로 외국인들을 추방을 하고 있던 시점이어서 외국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고를 했다. 그는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지 않고 백방으로 탈출의 가능성을  찾아 보았으나 언어 소통과 아는 사람의 부재로 탈출의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몇몇 아는 현지인들에게 사정을 해서 옷가지들을 가지고 와서 바겐(물물교환)으로 개솔린을 몇 드럼 구입을 해서 겨우 자동자를 움직이고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고 했다. 현지 지도자에게 사정을 해서 공장을 계속해서 돌리면서 생산한 물건을 납품을 해서 그 공장 직원들에게 외부의 침입자들이 들어와서 파괴하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이후에 국가에서 전세기를 보내주어서 결국은 무사히 한국으로 되돌아왔지만 그 전세기의 비용은 노동자들의 호주머니에서 각출을 해야 했다고 정부의 무성의에 분노 했다. 한국에 귀국에서 5년이 지난 후에 그는 이란에서 미국으로 탈출을 한 그 사장을 만날 수 있었고 그에게 그 당시에 이란에서 사장을 대신해서 그가 매를 사장 대신으로 맞을 뻔한 이야기와 그당시에 겪은 고초들을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사장은 할아버지의 노고를 치하 하면서 미국에서 그러한 이야기들을 들었다고 고맙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그 사장은 서울에서 재산을 모두 잃고 캐나다에서 신부가 되어있었다고 씁쓸헤 했다.

 할아버지는 치료를 시작하면서 하루는 "선생님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나요?"라고 질문을 했다. 할아버지는 이제 삶에서 정리를 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정리를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치료자에게 질문을 한 것이었다. 치료자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께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마음 놓고 싫도록 이야기를 하고 이제 삶의 마지막에서 내 삶의 공과 사, 잘된 것과 잘못된 것들을 정리를 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들을 하나씩 마음 속에서 정리를 하는 것임을 일러 주었다.

 치료자는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기를 "지금까지 할아버지께서는 6.25 사변에서 피난 이야기, 반공 포로 수용소 이야기들, 한국군에 재 입대해서 군복무, 전역 후에 어려운 생활들, 결혼 생활, 자녀들의 양육, 사업에서 큰 돈을 벌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외국 파견 근로자로써 베트남에서, 그리고 이란에서 겪었던 삶의 이야기들을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그냥 늘 이야기를 해 왔던 이야기들을 이제부터 치료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씩 정리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있었던 기억이 나고 회고가 되어지는 이야기들을 그냥 이것 저것 생각이 나는대로 이야기를 해 왔던 것을 이제부터 치료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잘된 것과 잘못 된 것들을 정리하고 반성하고 깨우치고 정리를 해 나가는 것임을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한 치료 회기에서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자신의 마지막 삶의 단계에서 자신의 살아온 삶에 평가를 스스로 해서 할아버지의 삶에 점수를 준다는 몇 점을 주실 수 있습니까?"(100점 만점, 50점은 보통, 0점은 제로)라고 물어보았다. 할아버지는 한참 생각을 하드니 스스로 "나는 50점을 줄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가 스스로 살아온 삶을 50점으로 평가를 했다. 치료자는 왜 할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50점 밖에 주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해서 가족들에게 제대로 풍족한 삶을 제공하지 못한 점을 죄의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지금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 막내 아들에게는 해준 것이 별로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치료자는 할아버지에게 6.25사변 때 홀로 남하해서 그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았고 그리고 한 때 한강에서 모래, 자갈 배로 1년 6개월 정도 풍족한 생활도 해 보았고 이후에 생활고 때문에 외국 노동자로 파견되어 생활을 했지만 그런대로 자녀들은 다 대학을 졸업을 했고 (세 번째 딸은 고졸--그녀는 혼자서 고학으로 대학에 갈 등록금을 마련해두었다가 부모님에게 빼앗겨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 이후에 치료를 받고 있는 아드님으로부터 치료자가 전해들었다). 결혼을 해서 보통 사람들로써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큰 딸은 우리 나라에서 최고 여자 대학을 나와서 고등학교 교사로 있다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캐나다에서 잘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캐나다에서 딸의 초청으로 캐나다를 몇 년 전에 다녀왔었고 일본에도 다녀 왔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들어서 치료자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할아버지께서는 한 때 풍족했던 한강에 모래, 자갈 채취를 했던 1년 6개월의 풍족한 생활에 성공의 기준을 둔 것 같아 보이는데 그래도 그런 시절이 한 때 있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6.25사변에서 살아남을 사람들이 다 어렵게 살아왔고 60년대 70년대에 다들 허리띠를 졸라매고 힘들 게 살아온 것은 사실인데 할아버지가 너무 한때 성공에 삶의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기준으로 삼고 자신의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치료자가 객관적으로 볼 때 할아버지의 삶은 80점 정도는 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는 치료자의 어려가지 기준의근거를 들어보시드니 고개를 끄떡거렸다. 수용을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그 다음에 가족들에게 치료자와 나눈 이야기들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80점 정도로 평가를 받는 것이 처음이고 그 생각에 기분이 좋다고 아드님의 치료 시간에 그러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신의 삶이 실패를 했다고 평가를 한다면 삶은 비참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치료 시간에 할아버지의 삶을 한가지씩 잘못된 것, 잘된 것을 평가를 하고 그리고 한이 맺인 가슴 속에 이야기들을 토해내고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마음 놓고 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을 밟아갈 것임을 에고를 했다.

 치료자는 그 다음 치료 시긴에 할아버지가 베트남에서 한 일들과 이란에서 한 일들에 대한 평가를 해 보기로 했다. 베트남에서는 영어가 유창하지 못했지만 눈치와 적응력이 빨라서 위기들을 극복을 하고 인정을 받았던 점은 할아버지의 적응 능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재치있고 정직하게 그는 어려움들을 기회로 3년간의 잘 마무리를 했고 다른 사람들보다 봉급을 세배 정도 많이 받았던 점이 그것을 말해 준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란에서 그가 위기 시에 사장은 정작 미국으로 도망을 가 버리고 그가 남아서 2000명의 생명을 끝나지 책임을 지고 무사시 한국으로 귀환을 하게 한 그 공로는 비록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지만 하늘이 알고 할아버지의 양심은 알고 있다. 국가에서 표창장을 받을 만한 사건인데로 아무도 이것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무정부 상태 즉 6.25 직전의 북한에서 공산당들의 횡포에 비유를 했다. 호메니 정권은 미군을 쫓아내고 정권을 세운 나라로 그 당시에는 외국인에 적대적이어고 공산정권과 유사했다. 그러한 환경에서 그의 위기 관리 능력이 발동을 했고 그는 끝까지 위험을 모릅쓰고 남아서 2000명의 생명을 구한 사람과 같았다. 치료자는 이러한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하면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영화는 나치 독일에서 유태인들이 아슈비치 수용소로 끌려 가서 가스실에서 처형을 당하는 시절에 유태인들을 나치 군 장교의 눈을 피해서 유태인들을 빼돌려서 목슴을 구한 쉰들러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영화화 한 이야기였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살아 남은 유태인들은 그 쉰들러를 기념하기 위해서 기념비를 세우고 그들이 살아남은 것을 쉰들러 때문임을 지금도 추모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로써 그 살아 남은 유태인들은 스스로를 쉰들러의 후손으로 부르고 있다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였다. 치료자는 할아버지에게 치료자가 하는 이야기처럼 자신이 2000명의 생명을 구한 사람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자신을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누가 들어도 무법천지에서 자신의 생명을 우선으로 사지에서 도망을 가는데 할아버지는 그러한 것을 마다 하고 끝까지 그들을 보살피고 안내를 해서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한 공로는 할아버지의 몫임을 강조를 했다. 그것은 할아버지가 상이나 명예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니고 양심에서 그의 직무를 다한 것이니 그것은 하늘이 알고 할아버지의 양심이 증인으로 알고 있음을 강조 했다.

 치료자는 우리는 조상들이 늘 하는 말들 즉 "하늘을 우르르 한점의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할아버지에게 물어 보았다. 할아버지는 자신은 "하늘을 우르르 한 점을 부끄러움이 없다"고 힘주어 말을 했다. 고로 치료자는 할아버지에게 이제부터는 이란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단순히 사건 그 자체만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 그가 2000명의 생명을 구한 사람으로 아무도 자신을 알아 주는 사람이 없어도 그 공로는 분명히 할아버지가 받아야 할 공인 것을 누가 들어도 인정을 할 것임에 틀임없으니 자신에게 "내가 죽어서 하느님 앞에 가거나 염려 대왕 앞에 가드라도 내가 떳떳하게 나는 누가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하라고 해서 한 것도 아니지만 나는 2000명의 생명을 구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 했습니다. 내가 가장 내 세울 수 있는 것은 그 사람들이 무사히 귀국할 때까지 그들을 무법천지의 외국에서 보호하고 보살펴 주는데 최선을 다한 것이 내 삶에서 가장 큰 보람입니다." 라고 자신의 자아에게 그리고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즉 그 자신의 삶 중에서 한 개의 사건을 긍정적으로 정리를 한 한 가지 예가 될 것이다. 고로 할아버지는 자신의 이란에서 과거를 되돌려 회상을 할 때 그는 자신감이 올라가고 보람있는 삶을 살았다는 흐뭇함을 과거와 달리 지금은 느끼게 될 것이다.

 할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늘 자신의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로써 소설이나 영화로 남길 만하다고 늘 이야기를 해왔고 치료를 받으면서 늘 입으로 자신의 이야기들을 이야기를 하면서 한편의 소설처럼 한편의 영화처럼파란 만장한 삶의 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면서 아쉬워하고 있다.아느님을 치료자에게 할아버지의 이러한 소망들 때문에 딸은 대학에서 국어 국문학을 전공했고 손자, 손녀들로 모두가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가 이러한 자신의 삶을 입에 달고 다는 것은 그 삶을 경험하면서 삶의 경험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삶의 공과 사를 정리하지 못해서 아쉬움의 마음에서 나오는 심리적인 현상임을 알 수 있다. 고로 이제 심리 치료에서 이러한 삶을 한가지씩 정리를 해가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가되면 그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삶에 미련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되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죽음을 직면해서 원도 한도 없이 죽음을 기꺼히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기에는 너무나 놓아 버릴  수 없는 안타까운 삶들 때문에 고민하고 아쉬워함이 삶을 마음 속에서 내려 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치료자는 할아버지가 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고향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둘 째 형님, 큰 형님 그리고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정리를 하면서 그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고 그들에게 사죄를 하고 불효를 용서 받고 보고 싶은 그리운 정들을 말로써 표현을 함으로써 할아버지 자신의 마음 속에 억압된 감정들을 하나씩 풀어내어서 정리를 하면서 마음의 짊들을 내려 놓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마무리하고 정리를 하는 과정을 겪을 것임을 예고 했다.

 할아버지가 30년 동안 가족 내의 금기인 "아들의 발목 절단"을 아들과 이야기를 해서 그 금기가 깨어졌다. 할아버지가 아들과 그 금기에대한 의사 소통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상세한 치료 과정을 알고 싶어신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