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40대 초반의 남자 W씨

증세: 밤에 누가 침입을 할까 두려워서 혼자서는 잠을 잘 수 없고 비행기를 탔을 때 비행기가 흔들리면 죽을까봐 두려워서 사색이 되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음

접촉: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치료를 받고 싶다는 e-메일을 보내 왔고 전화로 치료 약속을 하게 되었음

진단: 가벼운 우울증, 자아 장애(자기 주장이 없는 연약한 자아)

치료 기간: 6개월 전에 치료자에서 6개월간 심리치료를 받았던 사람으로 다시 6개월간 치료 재 계약으로 1주일에 1회로 2시간씩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아래의 치료 과정은 W씨가 12시간의 (총 60시간)치료를 받으면서 나타난 크다란 장애물을 뚫고 나가면서 치료의 진전을 소개한 것이다. W씨가 아버지와 커뮤니케이션의 장벽이 헐리면서 아버지와 처음으로 대화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치료의 과정:

 W씨는 다음날 치료 회기 시간에 도착하자 말자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선생님 제가 며칠 전에 아버지와 어미니에게 4시간 동안 지금까지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털어 놓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놀래서 기절하지 않았습니다." W씨에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치료자는 W씨에게 그 날에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소상하게 이야기를 해 보도록 했다. 그는 지금까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 왔지만 부모님에게 자신의 고통스러운 내면의 이야기들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이유는 아버지가 W씨의 마음 속의 이야기들을 하게 되면 놀래서 기절할지 모른다. 아버지는 6.25때 가족들을 북한에 두고 단신으로 월남한 사람으로써 지금까지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이제 팔순이 (80대의 나이로) 넘어서 아버지에게 불쾌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면 나이 때문에 혹시 충격으로 쓰러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두려워했다. W씨가 작년에 6개월 동안 심리치료를 받고 있을 때에도 부모님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고 지금도 두 번째 치료 계약에서 10회의 치료 회기가 흘러 가고 있지만 부모님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지난 치료 회기 시간에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치료자는 지금까지 그에게 부모님에게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심리 치료를 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내가 심리적으로 힘들어서 심리치료를 찾게 되었다고 말씀드리도록 했다. 부모님이 "왜 너가 심리치료를 받느냐?" "너와 같은 정상인들이 무엇 때문에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즉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자녀들이 심리치료를 받겠다고 이야기를 하면 "너와 같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심리 치료를 받게 되면 대한민국 사람 전체가 다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고 또 심리치료는 "마음만 강하게 먹으면 되지 그러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을 하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부모님이 "너같이 정상적인 사람이 무엇 때문에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다음과 같이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평소에 늘 자아 훈련을 해 왔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최근에 심리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워서 인터넷에서 심리 치료를 잘 하신다는 분을 찾게 되었습니다. 제가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정상으로 보이지만 저는 심리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제 처(부인)가 지난번에 "누가 우리집 현관문의 비밀 번호를 누르는 소리를 듣고 혹시 도둑이 왔던 것이 아니냐?" 라는 말을 듣고 공포증으로 밤에 잠을 며칠 동안 자지 못하고 또 "출장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 혹시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이 아닌가?" 두려움 때문에 심장이 뛰고 호흡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 나이가 40대 초반인데 이러한 현상을 분명히 내 마음 속에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이 되어 심리 분석 치료자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심리 분석 선생님이 말씀을 하기기를 " 내면의 심리적인 공포 문제는 어린 시절의 양육의 과정에서 틀림없이 심리적인 상처나 고통스러움이 원인이 된다"고 말씀하시고 지금까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내 마음 속에 쌓인 심리적인 문제들을 찾아서 치료를 받아 왔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과거는 지나갔기 때문에 필요없다"고 생각을 해 왔으나 내 지난 어린 시절의 과거의 상처와 고통스러움들이 내 마음이 심층에 쌓여있는 것에 나도 모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너무나 많은 고통스러움을 느꼈고 그 당시에 부모님에게 그러한 고통스러움을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이 공포증의 원인이 되었다고 심리분석 치료를 하시는 선생님이 말씀했습니다. 내 신체적인 나이는 40대이지만 내 자아는 어린 시절에 성장이 멈추어서 내가 초등학교 어린이처럼 공포증을 가지게 되었다고 분석 치료 선생님이 말씀해 주었고 실제로 내가 치료 시간에 그러한 고통스러움, 부모님에게 마음대로 편안하게 제대로 지금까지 말을 할 수 없었던 감정과 느낌과 생각들이 그 분석 치료 선생님에게 터져 나오는 것을 보고 내 자신도 깜짝놀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나를 도와주세요. 내가 마음 대로 부모님에게 내 고통을 말씀을 할 수 있도록 제발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치료 시간에 자아 표현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치료자는 놀라지는 않았다.

 치료자는 W씨가 언젠가는 그러한 자신의 내면의 고통스러움을 이야기를 할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부모님에게 그러한 내면의 고통스러움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부모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증거이고 그러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비로소 부모님에게 자신의 내면의 고통스런 이야기. 갈등의 이야기들을 흘러감으로써 서로 의사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W씨와 그의 부모님은 지금까지 "서로 속내를 털어 놓고 허심 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의사 소통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했다. W씨가 치료자와 치료를 받으면서 그러한 점을 시인을 했다. 그는 한번도 제대로 자신의 속 마음을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즉 그와 부모님은 제대로 된 의사 소통을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커뮤니케이션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 제대로 흘러간 적이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그는 치료자에게 심리 치료를 받고 난 후에는 자주 막내 누나와 만나서 심리치료를 받은 내용들을 나누고 있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막내 누나는 W씨가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에 심리치료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 자신도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다면서 심리치료 선생님과 치료 시간에 나눈 이야기를 듣고 싶어해 왔다고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소상하게 했다.

 그는 막내 누나 역시 비만으로 그리고 둘 째 누나 가족을 막내 누나가 부양을 하다시피 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가족들이 다 대학을 졸업을 했지만 막내 누나는 고졸로 일찍이 화장품 매장을 하던 매형(큰 누나) 한데서 사업을 하는 기술을 배워서 매형내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고 나서 그 화장풀 매장을 인수해서 경제적으로는 풍족하게 살고 있지만 심리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고통스러움을 많이 경험을 해서 내면 속에 그 고통들이 쌓여있다고 막내 누나가 말을 했고 그녀도 조만간에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소개를 했다. 심리치료 이야기들을 막내 누나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W씨는 그의 가족들이 지금까지 제대로 된 자기 표현이 가족들 사이에서 흘러가지 않았던 것을 시인을 하면서 우리 가족은 어떤 영화 속의 가족들처럼 "침묵의 가족" "벙어리 가족" "말이 없는 가족"이었다고 그들 스스로가 이름을 붙였다고 털어 놓았다. 막내 누나와 W씨는 두 사람이 외할머니의 임종시에 정작 부모님은 곁에 없었고 막내 누나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W씨가 옆에서 외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았던 것을 회상을 했다. 막내 누나도 외할머니의 임종 때 그녀가 옆에서 지켜보았던 것을 상세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고 두 사람이 심리 치료 시간에 다루었던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 형제들 사이에서도 서로 속내를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막내 누나와 W씨의 그러한 의사 소통이 마침내 누나가 W씨 못지 않게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고 W씨에게 털어 놓았다고 했다. 막내 누나는 W씨와 심리 치료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변화 된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막내 누나는 치료 시간에 분석이 되었던 W씨의 이야기에 귀을 기울이고 듣고 있고 그녀도 치료자의 분석에 공감하고 그녀 자신이 변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을 했다.

 막내 누나는 최근에 어린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당했던 것을 W씨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에게 맞고 있을 때 어머니가 아버지를 막아서서 "왜 아이를 때려요? 이 아이가 나중에 커서 커게 훌륭하게 될 아이인데 왜 함부로 아이에게 손찌금을 하느냐?"라고 항의를 했던 것의 회상을 하고 어머니의 보호를 감격스러워했다고 기억을 이야기 하는 것을 막내 누나와부터 최근에 들었다고 말을 했다. 어머니로부터 그러한 조그만 보호가 누나에게 엄청한 감동을 주었고 평소에 그러한 것을 받아본 기억이 없는 누나는 평생동안 그 기억을 마음속에 새겨 왔었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막내 누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지금까지 주의와 관심은 커녕 냉다만 받아 왔다고 막내 누나가 W씨에게 털어 놓았다고 했다. 경제적으로는 막내 누나가 가장 먼제 독립을 했고 지금까지 막내 누나와 W씨가 부모님에게 효도를 가장 많이 했으면서도 부모님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항상 막내 누나를 비하하고 비판적이었다고 했다. 자동차 운전 면허를 따기 위해서 막내 누나가 운전 연습을 한다고는 소식을 들었던 아버지는 "네가 무슨 운전이냐?"라고 빈잔을 주었던 말을 막내 누가가 기억을 하면서 최근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막내 누나가 그녀 자신의 승용차롤 몰고 가면서 아버지에게 "아버지 옛날에 내가 운전 면허증을 따려고 운전 연습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네가 무슨 운전 연습이냐?" 너는 운전 면허증을 딸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 내가 운전을 잘 하고 있지 않습니까?" 라는 말에 아버지는 말이 없이 웃으셨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W씨는 이제 누나가 심리 치료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아버지에게 그녀 자신의 속내를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부려워 했었다. 그러나 정작 W씨 자신은 아직도 부모님 특히 아버지에게 W씨 자신의 내면의 고통을 말로써 표현을 직접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못내 아쉬워해 오던 터였다.

 W는 아버지가 권위적이고 극도의 우익적인 사고 방식이고 좌익적인 사고 방식을 혐오하는 반공주의자라고 늘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북한에서 절처한 반공 주의자로 살아왔고 그리고 바로 위의 형은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한 가족 안에서 형제가 완전히 극과 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고 아버지는 시간이 나면 늘 이야기를 해 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막내로 태어났었고 6.25 직전에 북한에서 전문 대학을 다닌 인테리였다고 늘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지금도 아버지는 전문 대학 시절에 들고 다녔던 까뮤의 작품 이나 게오르규의 "25시"의 작품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고 했다. 그의 형님은 북한에서 철저한 빨갱이로 변신을 했고 아버지는 절처한 반공 주의자로 한 가족 안에서 양극 대립으로 고통스러워하시던 아버지의 어머니(할머니)는 늘 남쪽에서 U.N군이 북한으로 밀고 올라갔을 때 아버지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는 두 손을 들고 환영을 했으나 어머니는 이쪽(작은 아들인 아버지의 자유주의) 편도 들지 못하고 공산주의가 밀로 내려왔을 때더 공산주의를 환영하지 못하고(둘 째 아들의 공산주의) 언제나 말이 없고 중립이었다고 회상을 자구 하시면서 눈물을 지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일찍 신식 문화 즉 해방직후에 전문 대학에 다녔으니까 신식 서양 문화에 접했고 그 시절에 세계 문학에 심취해서 새로운 사상으로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좋다는 것을 그 시점에서 지각하고 민주주의의 신봉자가되어 지금은 남한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 있는 것을 자랑스러게 생각하고 있다고 치료자와 W씨는 아버지의 장점을 지난 치료 회기 시간에 이야개를 나눈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만약에 아버지가 그러한 사상적인 깨우침이 젊은 시절에 없었다면 지금 쯤은 북한에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주린 생활을 했을 것이다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신식 사고에 일찍 접했고 자유 민주주의이 우수성을 일찍 깨달은 지식이었음이 분명했다.

 아버지의 이러한 영향력은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누나들이 모두 국문과를 나오게 되었다고 회상을 했다.아버지의 젊은 청년기 시절에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책에 대한 이야기들이 누나들을 모두가 국문과를 다니게 했지만 정작 W씨 자신을 정치 외교학을 전공해서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자신을 분석하면서 아버지가 가족 구성원들에게 미친 영향을 스스로 분석을 한 것을 치료자가 틀림이 없다고 인정을 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아버지에게 복종을 해서 아버지의 말에 순종을 해 왔다.그러나 청년기를 보내면서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을 하게 되었고 대학 때는 그 당시 유행이었던 이념 써클에 가입을 해서 철저하게 대학시절을 가족으로부터 외톨이로 집에서 보낸 시간 보다는 대학 이념 써클 안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고 대학 3학년, 4학년 때는 거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이것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특히 아버지로부터 싹수가 노란 반항아, 앞으로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사회의 낙오자라는 딱지를 일찍부터 찍혔다고 털어 놓았다. 그 당시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형 집에서 같이 살았기 때문에 아버지는 늘 매형 밑에서 기술을 배워서 사업 기술을 배우라고 명령했고 매형도 시간이 있을 때마다 W씨에게 사업기술을 배우라고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처럼 명령을 했던 것을 회상을 하면서 씁쓰레 했다. W씨 자신은 그 때부터 가족들에게 가족 구성원으로써 존재를 인식받지 못했고 그는 가족 내에서 심리적 영역을 상실했다.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W씨의 생일을 한번도 가족들이 챙겨준 적이 없었다고 분노했다. 아버지는 대학생이 된 아들에게 매일 같이 초,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매형의 승용차를 매일 아침마다 물 세차를 하도록 명령을 했고 대학생이 된 W씨는 아버지의 명령에 도전을 해서 대답을 하지 않고 무시했다. W씨는 그의 어린 시절, 사춘기 시절, 청년기 시절인 대학 시절 그리고 결혼 후에 지금까지 성인 시절을 회고해서 어느 시절에 가장 고통스러운시절인가를 묻는 치료자의 질문에 서슴치않고 대학 시절이라고 대답을 했다. 그는 지금도 아버지가 하는 말에 마음 속으로는 반대를 하면서 직접 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W씨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 때문임을 스스로 분석을 해서 치료자를 놀라게 했다. 아버지는 W씨와 스스로 경쟁을 하는 것 같다고 스스로를 분석해서 털어 놓아다. 지난 치료 회기 시간에 그가 불평을 했던 것은 그가 100만불 수출을 공적으로 국가로부터 수출탑의 트로피를 받았는데도 아버지는 그것에 대해서 칭찬이나 격려가 한마디도 없었다는 것을 이야기를 했다. 청년기 때 매형의 친구 사업가가 200만불 수출탑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매형으로부터 전해 듣고 마치 자신의 성공처럼 자랑을 하고 다린 것을 회상하면서 아버지가 아들인 W씨와 무의식적으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아버지를 분석을 한 것이 회상되었다.

 아버지의 이러한 단점에 비추어서 이번에는 아버지의 이러한 장점을 지난 시간에 이야기를 한 것이 W씨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W씨 자신의 고통스러움을 표현을 할 수 있게 된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W씨는 아버지의 장점을 아버지에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로 인해서 자신이 지금까지 느껴온 내면의 고통스러움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W씨의 이야기를 아버지는 긍정적으로 들어주였다고 했다. W씨가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을 했을 때 아버지는 반대를 하지 않았고 자신도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최근에 불면증으로 밤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는데 4시간에 걸쳐서 지금까지 살면서 고통스러웠던 이야기들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한 후에 아버지에 대해서 마음 속에 쌓인 분노, 적대 감정이 눈 녹듯이 깨끗이 사라졌다고 기뻐하면서 신기해 했다. 아버지도 W씨와 이야기를 한 그 날 밤은 불면증에서 벗어나서 시원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고 그 다음 날에 아들인 W씨에게 이야기를 해 왔다고 기뻐했다. 아버지는 W씨와 4시간의 긴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가 6.25 직후에 남한에서 혼자서 살아 오다가 부인인 어머니를 만나서 결혼을 했고 결혼 후에 3년 동안 밤새도록 울면서 보냈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W씨와 부인인 W씨의 어머니에게 털어 놓았고 4시간의 이야기 도중에 내내 아버지는 눈물을 글썽그렸다고 아버지의 얼굴 표정을 지켜 본 W씨가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시도 때도 없이 북한에 두고 온 부모 형제 이야기의 반복에 아예 귀를막아 버렸다고 어머니의 평소 푸념을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최근에 W씨에게 틀 이빨 대신에 임플란트(이빨을 심 잇몸에 심은 이빨)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고 W씨는 아버지에게 치료 비용을 드릴 터이니 적당한 치과에 가서 임플란트를 하라고 이야기를 했으나 아버지는 망설이고 있다고 지난 치료 회기 시간에 이야기를 하면서 W씨는 아버지가 평소에 늘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해서 캐나다에 살고 있는 매형에게 전화를 해서 매형이 잘 아는 믿을 수 있는 치과 의사를 찾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으나 막상 아버지와 그 임플란트과 치과 의사 이야기를 했을 때 아버지는 W씨에게 실제로는 아버지가 나이가 많아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임플란트를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는 회의적인 생각 때문에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의사 불통이 상대의 생각을 오판한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랬다. 마음 속에 드는 생각들을 이야기를 함으로써 서로의 오해를 줄이고 그 생각 때문에 서로 껄끄러워짐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 게 되었다.

 W씨와 아버지의 서로 간에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처음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W씨가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는 아버지는 작년부터 아들의 행동이 달라지고 있음을 마음 속으로 감지하고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고 했다. 아들이 점차로 집에서 과거와 달리 아버지의 영역으로 밀고 들어온다는 것을 아버지가 감지를 하고 "이제는 자식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했다고 아버지가 털어 놓았다고 했다. 작년에 6개월 동안 W씨가 치료자에게 심리 치료를 받으면서 가족 관계에서 W씨가 심리적 영역이 없어서 가족 안에서 "존재의 영역의 부재"를 분석해 내고 자신의 심리적 영역을 확보해야 공포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을 지적했고 W씨는 치료자의 이러한 분석을 수용해서 자신이 부모님의 눈치를 보고 살고 있고 직장에서 스트레스 속에 살다가 집에 가면 가정이 "마음의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부모님의 비위, 눈치를 보고 살고 있는 "창살 없는 감옥"이 되고 있음을 시인을 했다. W씨의 부인 역시 W씨와 똑같은 처지에 있었다. W씨의 부인이 부모님을 처음부터 모시겠다고 자기 스스로 지원을 했기 때문에 큰 누나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W씨에게 절대로 부모님을 모시고 한집에 살지 말 것을 부탁을 받았으나 W씨는 그 당시에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부모님과 합가로 같이 살아 오면서 지금 현재 자신의 처지를 실감하면서 큰 누나가 부모님을 모시고 10년 이상 같이 살면서 부모님과 특이 어머니와 누나의 갈등 관계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심리적인 고통을 주고 받았는지를 깨달은 누나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이 이러한 고통 속에서 살고 있음을 여러번 치료 시간에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W씨가 부모님과 같이 살 게 된 것은 부인이 스스로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자원 봉사를자청 했기 때문에 같이 살 게 된 한가지 이유도 된다고 했다. 최근에 부인에게 왜 결혼 직후에 부모님을 모시고 살겠다고 자청을 했는지 W씨가 물었을 때 부인은 고졸의 학력 때문에 부모님의 인정을 받으려고 했고 그리고 그녀 자신이 친정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지 못한 한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 놓았다고 했다.

 W씨가 처음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 그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게 분노, 미움이 많았다. 이후에 어린 시절의 분석과정에서 아버지의 권위적이고 강압적이고 자녀들을 명령적으로 아버지의 말에 복종하도록 양육한 것에 엄청난 분노와 적대 감정이 마음 속에 누적되어있음을 깨닫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 쪽으로 자연스럽게 방햐이 바뀌게 되었다. 지금은 지난 주일에 아버지와의 커뮤니케이션으로 그동안에 누적되어진 감정들이 눈녹듯이 녹아서 사라진 것 같다고 표현을 하면서 그는 어머니에대한 분노 쪽으로 방향이 바뀜을 치료자가 느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리고 큰 매형 가족과 함께 살 때에 큰 누나가 고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 자녀들의 양육을 도와달라고 친정 부모님과 합가를 해서 같이 살 게 되었으나 정작 어머니는 누나의 자녀들 즉 외손자, 외손녀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귀찮은 존재로 겨우 생색만 낸 것 때문에 누나와 엄청나게 갈등을 만들었고 그리고 W씨가 결혼 후에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친손자, 친손녀들을 제대로 돌보아준 적이 없다는 분노 그리고 W씨 자신이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에 그리고 대학 시절에 엄마의 따뜻한 손길, 사랑을 제대로 느낀 적이 없어서 엄마의 자녀들을 돌보고 관심을 가져주지 못한 엄마에 대한 분노가 엄청났으나 아버지의 문제 때문에 억압되어진 것이 다시 표면으로 떠 오르고 있음을 치료자가 느낄 수 있었다.

 W씨는 최근에 어머니가 자주 이웃집 친구들이 자식들로부터 많은 용돈을 받고 부모님의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고 자랑을 하는 말을 여러번 듯게 된 이벤트들을 소상하게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아파트 근처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W씨가 듣고 나서 W씨의 부인이 시어머니에게 수영을 배우라고 돈을 주었고 수영을 배우던 어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이웃집에 어머니의 친구가 수영 개인교수를 받는 것을 보고 어머니 자신도 개인 교수를 받고 싶다고 말을 하면서 그 수영 코치가 불친절하고 직접 친절하게 따뜻하게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비난을 하는 말을 듣고 수영 개인교수를 받게 되면 매달 백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것을 알고 W씨가 어머니에게 이웃집 그 어머니이 친구 분의 아들은 대기업에 사장이지만 나는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서 나는 그집 아들만큼 많은 돈을 벌지 못합니다라고 말을 하자 어머니는 대뜸 화를 내면서 "내가 너에게 돈을 달라는 말이 아니다"라고 말을 돌려 버리는 어머니의 성격을 알고 내심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그렇게 돌려서 우회적으로 표현을 하는 어머니에게 분노했다. W씨의 부인은 그 말을 듣고 "어머니가 또 시작이네" 하면서 수영 개인 교수를 받도록 해 주었다고 했다. 최근에 어머니는 또 이웃집 아무개는 돌침대를 샀다고 하면서 돌 침대가 노인들의 건강과 수면에 그렇게 좋다는 말을 하면서 은근히 W씨를 압박하고 있다고 어머니에게 분노를 표현을 했다. 어머니는 그런 식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우회적으로 표현을 해서 은근히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못한다고 며느리와 W씨을 압박해 왔다고 노여워했다. 다른 집의 자녀들은 한달에 용돈을 그렇게 많이 준다고 (한달에 백만원 정도) 그녀의 용돈 타령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직도 조선 시대의 사고 방식에 살고 있고 적어도 W 씨는 그러한 사고 방식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치료자가 지적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어린 시절에 너희들을 키워주었으니 이제 부모님이 늙어졌으니 자식들이 봉양하고 효도를 해야하지 않겠느냐?"라고 이야기를 해 왔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에 왜 부모님들이 자녀들과 함께 살지 않으려고 하고 노후에 자식들에게 의존하지 않으려고 하는지?를 부모님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음을 치료자가 지적을 했다. 옛날에는 며느리가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를 했고 지금은 시어머니가 며느리 시집 살이를 한다고 자식들과 같이 살지 않으려고 하고 있는 시대적인 변화를 지적을 했다. 부모님은 이제 서양식으로 노후에 자식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연금으로 자신들의 독립심을 찾고 있고 그것이 시대적 흐름이라고 시적을 했다. W씨가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은 결혼 직후에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조그만 아파트에서 엄마가 큰 방을 자치자고 아버지가 작은 방을 차지라고 W씨 가족은 조그만 공부방에서 두 명의 자녀들이 태어나서 생활 하면서 W씨가 부모님으로부터 고통을 받은 것을 치료자가 지적을 하면서 W씨는 정작 누나가 한 충고를 잊어 버리고 부모님의 명령을 그대로 실천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했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부모님의 말에 복종을 하라고 세뇌를 시킨 것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했다.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공격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W씨가 하고 있는 행동을 행복한 가족 생활이 아니고 W씨 자신의 가족 득 부인과 자녀들의 고통을 희생하면서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고 있는 것이 잘못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W씨에게 치료자는 어머니의 과도한 보챔, 요구들에 굴복해서 어머니의 말들을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어머니의 욕구 만족을 가져올 수 있고 그리고 어머니가 그녀의 욕구를 충족해서 얼머나 행복해지겠느냐?를 물어 보았다. W씨는 어머니는 욕구를 채울수록 그 욕구는 끝없이 또 다타날 것이고 채워도 채워도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치료자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에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채워지지 못한 사랑의 빈 공허함을 물질적으로 채워넣으려고 하는 어머니를 보도록 했다. 물론 자식이 경제적으로 충분한 여유가 있어서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그러나 W씨는 그렇게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하지만 부모님의 보챔에 그의 가족을 희생시키고 고통으로 효도를 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을 했다. 그것은 효도가 아니고 "내면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고통의 절규임"을 알도록 했다. 어머니의 그러한 속에 텅 빈 공간을 어머니는 물질적인 보상으로 채워 넣어서 노녀의 텅 빈 마음을 달래려고 하는 행동은 결코 채워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채워도 채워도 만족이 없는 밑빠진 독에 물을 붙는 것같 같음을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W씨는 두 번째 치료 계약이 시작되면서 부인으로부터 담배를 끊도록 심리치료 선생님에게 신신 당부를 한 말을 회상을 하면서 치료자는 W씨에게 담배 이야기로 화재를 돌렸다. 그는 하루에 담배 한 갑을 피운다고 했다. 언제부터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느냐 는 치료자의 질문에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고 그리고 중 3학년 때이 조금씩 피우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자신의 담배를 사서 호주머니 속에 넣어다니면서 피우기 시작했고 그리고 대학 시절에는 하루에 담배 한갑 절반 즉 1.5 갑을 피웠다고 했다. 담배 한 갑이 몇 개의 담배 개수가 들어있느냐 고 물었을 대 그는 20개의 개수가 들어있고 1.5 갑이면 30개씩 하루에 담배를 대학 시절에 피웠다고 털어 놓았다.치료자는 담배를 피우는 것은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 그리고 순간적인 껄끄러움을 피하기 위한 자아 규제행동의 하나로써 자아를 달래기 위해서 담배와 술, 마약을 하는 것임을 앞으로의 다음 치료 회기 시간에서 다룰 것을 예고하면서 그 치료 회기 시간을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