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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28세의 우울증 여성 환자 P 양

증세: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고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정신과 약물을 과다 복용으로 자살을 시도 했으나 친구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회복

진단: 대인공포증, 회피적 성격장애, 우울증

연결: 인터넷으로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접촉한 후에 치료를 받고 싶다고 메일로 연락이 옴

치료 기간: 1주일에 2회 씩 1회 2시간 분석 상담으로 1년동안 치료를 받았음

치료의 결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충동적 관계에서 회복되어 지금은 방송 통신대학에서 영문과에 재학중이고 어학 연수를 준비중

 

치료의 과정

 P양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아버지의 보살핌의 부족 때문에 대인관계를 제대로 배우지를 못했다고 했다. 부모님은 서울에서 만나서 행상을 하다가 힘들어져서 부인이 사는 고향으로 낙향을 해서 결혼 초반기에는 농사를 짓고 살았으나 소작농으로 힘들어서 자녀들을 제대로 양육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P양은 위로 오빠가 한사람이 있고 여동생과 남동생이 한명씩 있었다. 부모님은 돈을 모아서 이후에 과수원을 경영하게 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젊은 시절에 아버지는 늘 술에 찌들려 살았고 아버지의 음주 때문에 어머니와 잦은 가정 불화들이 자녀들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부모님은 자녀들을 돌볼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그냥 먹는 것과 입는 것 학교에 보내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고 했다. 자녀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자녀들과 놀이를 한느 미주알 고주알 의견을 나누는 것을 제대로 해 본적이 없다고 했다. P양의 오빠는 장남으로 부모님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아서 P양이 어린 눈으로 볼 때도 오빠는 아들이고 장남으로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가졌으나 P양은 부모님에게 제대로 요구를 해 본적이 없다고 했다. 착한 딸로 자라나서 부모님이 알아서 모든 것을 다 주실 것으로 믿었고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착한 딸이었다. P양은 두 남동생과 여동생에게는 어머니 대신 엄마 노릇을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바빠서 P양에게 자녀들을 대인 맞기고 엄마는 일을 해서 돈을 벌기에 신경을 썼다. 고로 P양은 동생들을 돌보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 보냈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오빠는 종교 모임의 한 가족이 이민을 뉴질랜드로 가는 바람에 그곳에 가서 1년 동안 유학생활을 했다고 했다. 오빠는 뉴질랜드에서 1년 동안 유학을 했다. 그 때문에 부모님은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어했고 이후에 오빠는 고등학교는 검정 고시로 대학 영문과에 합격해서 졸업 후에 미국 시민권을 가진 미국 여성과 결혼을 해서 5년 동안 한국에 생활하다가 지금은 미국에 다시 들어갔다고 했다.

 P양은 초, 중, 고등학교 때는 그런대로 공부를 잘 해서 부모님의 인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 당시에 아버지는 매일 술로 세월을 보냈고 가족 구성원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특히 어머니와 많이 싸웠으나 몇 년 전부터 건강 때문에 술을 끊고 지금은 종교 생활을 하면서 과수원 일에 몰두 하고 있다고 했다. P양은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의 술마시는 행동과 가족들을 괴롭히는 행동 때문에 아버지를 경멸하고 미워했다고 했다. 어머니와 P양이 아버지를 공격해서 아버지의 술마시는 버릇을 고칠려고 많이 노력을 했으나 갈등만 양산했다고 했다.

 고등학교는 인문학교에 갈 성적이 되었으나 굳지 인문학교를 고집하지 않고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자 회사에 2년 정도 다닌 후에 개인 사업을 하는데 사원으로 일을 하면서 문제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자 회사에 다니면서도 문제가 된 것은 친구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만두었다고 했다. 개인사업체에서 경리 사원으로 있으면서도 동료들이나 주인과의 갈등을 제대로 뚫고 나가지 못해서 1년 6개월 정도 하다가 그만 두고 부모님의 과수원 농사일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과의 잦은 충돌로 끊임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된 것이었다.

 부모님은 P양이 학교 시절에는 온순하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인정을 해주었으나 P양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얼마 후에 그만 두게 되자 P양의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왜 다른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돈도 많이 벌고 결혼도 잘 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 라고 구박과 압력을 넣게 되면서 P양이 부모님과 갈등이 계속되게 되었다. 그녀는 부모님의 과수원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죽어도 하지 못하겠다고 끊임없는 불평을 했다. 부모님은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지 못하면 농사일을 조용하게 하든지 아니면 직장 생활을 해서 독립해서 나가든지 하라고 요구를 했으나 P양은 사실은 사회생활에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대인관계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어떻게 사람들과의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가?를 어린 시절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농번기 때는 P양을 데리고 과수원일을 시켰으나 P양을 가만히 내 버려두지 않았다. 언제나 옆에서 잔소리를 늘어 놓거나 일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하라 간섭을 했다. 고로 그렇지 않아도 하기 싫은 농사일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녀는 몇 번을 가출 아닌 가출을 했다. 일을 하다가 잔소리를 하면 그대로 집에 돌아와서 자가용 차를 몰고 드라이버를 했다고 몇 일씩 외박을 하고 들어오기도 했다. 인터넷에 빠져서 밤새도록 전자 오락을 하다가 너무 늦게 전자 오락을 하는 아버지와 갈등으로 아버지에게 죽도록 폭력을 당한 것도 여러번 있었다.

 P양은 처음에는 자신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잘 몰랐다. 왜 사람들은 자신만 보면 피하고 자신을 뒤에서 욕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관계를 가지는 사람마다 결국에는 서로 적으로 원수처럼 되어가는 것을 자신의 문제 때문이 아닌 상대방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한 곳에 오래 정착을 할 수 없었다. 친밀감정이 생기면 오히려 그녀에게 불편해졌다. 상대방의 눈치만 보고 좋은 말만 가려서 하고 절대로 상대방의 기분을 다치게 않게 하다고 보니 정작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모두가 자신이 잘못된 것으로 만들지게 된 것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약 5년 동안 끊임없이 몸부림을 친 것이 분석 결과 밝혀졌다. 그녀는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인터넷으로 알 게 된 남자들을 찾아 만나기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으나 편지를 주고 받을 때는 그런대로 서로 잘 통하는 면이 있었는데 막상 만나고 보면 갈등이 생겨서 해어지고 마는 패턴이 계속되었다.

 자살 시도 후에 할 수 없이 그녀는 종합 병원에 정신과에 입원을 했다. 그곳에서 몇 개월간 모범 환자로 병원의 스텝들에게 인정을 받고 병원에서 도우미로 잘 해나가다가 40대 중반의 언니 뻘 되는 알콜 중독자와 친밀하게 되면서 레스비언 관계로 발전해서 병원에서 쫒겨나게 되고 이 사실이 부모님에게 알려지게 되고 부모님의 멸시와 학대를 받게 되면서 레스비언 언니와 함께 가출해서 약 1년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레스비언 언니와 헤어지고 갈곳이 없어 집에 전화를 걸어서 부모님이 자동차를 가지고 서울에서 P양을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 P양의 5년 동안의 고통스런 세상 경험을 한 그녀의 오디세이의 끝이었다.

 이후에 부모님 집에 같이 지내면서 갈등을 계속하고 있던 중에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인터넷에서 접하고 난후에 심리치료를 요청한 것이었다.

 

이론적 근거

 P양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대화가 별로 없고 부모님의 눈치만 보고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친한 친구가 별로 없었다. 늘 외톨이었고 학교에 가기가 싫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고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부모님이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하루는 학교에 가지 않고 도중에서 놀다가 집에 되돌아온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동료들과의 큰 갈등은 없었다. 부모님의 체벌이나 폭력은 없었다. 오빠는 유치원 때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고 했다. 어떤 것을 사고 싶어면 사달라고 해서 가졌으나 P양은 부모님이 사주면 받았지 스스로 이것을 해 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오빠는 유치원에 다녔으나 P양은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하지 않았고 부모님은 그런 요청이 없는 P양을 보내주지 않았다. P양은 오빠는 유치원에 다니는데 왜 자신을 다니지 않았느나고 물어보았을 때 "나는 딸이니까 그런가 보다"라고 늘 생각해 왔다고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때에도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학교 생활이 안된 것은 아니었다. 성적은 그래도 상위권이었고 따돌림은 받지 않았다고 했다.

 가족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못한 것이다.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하지 못하고 갈등이 생기면 피하는 방법을 선택해서 항상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욕구를 전달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자신이 불쾌하면 상대에게 알리고 이것을 하지 말라고 당당하게 요구를 하지 못하고 항상 마음 속으로는 상대를 비난하고 상대와 관계를 끊어 버리게 되면서 사춘기를 지나면서 외톨이로 굳어진 것이었다. P양은 대인관계를 갈등이 없고 너와 나의 하나된 마음의 관계가 되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 관계는 갈등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면 그것을 피하지 말고 뚫고 해결해나가게 되면 친밀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치료에서는 과거에 그녀가 갈등을 일으켜서 상처를 받은 이벤트들을 한가지 한가지씩 끄집어 내어서 재연하면서 그것을 말로써 표현하게 하고 연결된 감정들을 표현하게 하는 치료의 과정을 계속해 나갔다. 그녀는 치료 시간에 늘 울었다. 울면서 마음 속에 쌓인 마음의 독소들을 뽑아냈다. 옛날에는 학교 시절에는 그런대로 다른 동료들보다 못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사회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고 다른 동료들은 결혼을 해서 아기도 가지고 남편과 결혼 생활로 독립된 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보면서 자존심이 상한다고 고통스러워했다.

 P양은 자신감과 자가 존중감이 낮았다. 그녀는 자신의 자아를 60점 정도 주겠다고 했다. 늘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듣고 핀잔을 들어서 자기 자신을 비하시키고 자신을 처벌해 온 것이 밝혀졌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 후에 사회생활에서 갈등을 일으키면서 대인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그녀는 자신을 미워하고 자기 학대를 일삼았다. 그녀는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라는 것은 밝혔지만 그녀 자신의 종교 이름을 끝내 치료자에게 밝히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끝내는 밝히지 않고 가명을 썼다. 이유는 이 세상에는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데 있었다. 처음에는 믿었던 사람들 한데서 발등을 찍히고 나니까 이제를 아무도 절대로 믿어서는 안된다고 자신에게 늘 타일러 왔다고 했다.

 치료의 과정에서 자신의 대인관계의 문제점은 부모님의 양육의 결함에서 온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분노를 마음 속에 담아 놓지 말고 표현하게 했다. 그녀는 특히 어머니를 미워했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에 양육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냥 밥 굶기지 않고 헐벗지 않고 학교에 다니게 학비를 대 준 것만으로 부모의 구실을 다했다고 큰 소리를 치는 부모님이 미워죽겠다고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린시절에 양육에서 상처를 많이 입었던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사춘기 때 공부를 하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하려고 시도했으나 자신의 아버지가 학비를 대주지 않았고 공부를 하는 것에 반대해서 제대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어머니 역시 성장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갈등이 많아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왜 자신과 동생들을 그렇게 제대로 돌보아주지 않했느냐고 항의를 했을 때 어머니는 "나도 그렇게 양육하는 것이 문제가 될 줄을 몰랐다"고 시인을 했다고 했다. 이러한 분노들이 빠져 나오면서 점차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이제 조용히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공부를 하지 못했으니 공부를 해서 반드시 전문가가 되겠다고 했다. 노동자로 노동만 하다고 평생을 허송 세월하며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아동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집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공부를 하고 있던 방송통신 대학 중국어 학과에서  방송 통신 대학 영문과에 전과를 했다.

 

치료의 결과

 P양은 치료를 해 나가면서 대인관계의 갈등은 좋은 사람을 선택함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갈등을 해결하지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 바람, 기대를 상대방에게 명료하게 전달하고 상대방의 불쾌감을 말로써 표현해서 다시는 그렇게 자신을 대하지 않도록 만들어나가는 것이 대인관계임을 알 게 되었다. 대인관계는 생각, 느낌, 상상 등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치료는 1주일에 2회씩 계속되었다. 거리가 멀어서 서울에 와서 저녁 때 치료를 받고 인근에서 잠을 자고 그 다음 날에 다시 2시간을 받고 집으로 귀가하는 것으로 약 1년을 계속하면서 치료 시간에 많이 울고 자신의 기대와 소망을 일깨우고 스스로 자아를 일으켜 세우고 자신감을 기르게 하는 과정을 계속해 나갔다. 약 1년의 치료 기간이 지나가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치료를 계속해서 더 받아야 한다는 치료자의 권유에 집에서 치료 비용 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 조금 쉬면서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여동생이 심한 대인공포증으로 가족 구성원들과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부모님에게 심리치료를 받도록 알선해 준 후에 동생의 치료 비용 때문에 6개월 정도 쉬기로 했다.

 P양은 이후에 다시 치료를 재개하고 싶다고 했다. 이후에 자신의 여동생을 통해서 치료가 중지 되고 난 후에 6개월 동안 부모님과의 갈등은 많이 해소되어 지금은 부모님에게 반항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지금은 방송 통신 대학 영문과에 입학에서 집에서 영어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것을 대견스럽게 받아들여서 일체 과수원 농사일을 시키지 않기로 했으며 앞으로 6개월 후에 외국 어학 연수를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했다. P양은 이제 공부를 해서 자신감을 쌓아서 자신을 자학하고 자해하는 자기 파괴적 행동에서 벗어난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아직도 대인관계는 원만하게 되지 않고 있으나 자신의 충동 욕구를 컨트롤하게 된 것은 고무적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