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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회사에 다니는 20대 초반의 여성 Y양

증세: 악몽을 자주 꾸며 친구가 별고 없고 우울해서 사는 의미가 없다

접촉: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방문한 후에 치료를 받고 싶다고 연락이 왔음

진단명: 가벼운 우울증, 불안증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 2시간 분석 상담 치료를 6개월간 받음

치료 결과: 우울증은 사라졌음, 친구관계가 개선되고 삶에서 에너지를 회복해서 활동적인 일상생활로 되돌아감

 Y양이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치료자에게 보낸 메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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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5월 13일 일요일, 오전 00시 47분 50초 +0900
   
 
 
  <jongmankim@hanmail.net>
 
안녕하세요.. 저는 전에 몇번 전화만 하고

치료받으러 가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름은 xxx 이구요.

사는곳은 충주입니다..

사실 조금 갈등이 있어서요... 제가 치료 받아야겠다 하고 결정하기 몇달전에

마음에 관한 워크샵을 하는 곳에 갔다 왔고 책들을 보고 제 나름대로

좋은생각들을 하려 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했지만 그런 저의 모습이

자연스럽지고 못하고 왠지 억지스러운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한약도 지어보고 침도 따보고 단전호흡도 해보고 한약을 지어주는 곳에선

홧병이라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가슴이 답답한것이니 스트레스를 풀면

바로 없어진다며 좋은 생각, 행동을 많이 하면 많이 좋아진다고 하고..

워크샵에서는 마음에 관한 강의와, 운동, 축복메세지, 좋아하는일, 아침

일찍일어나기, 명상등의 과제를 내며 꾸준히 하면 좋아진다고 했지만요..

한달동안 해봤는데 효과가 있었어요.. 하지만 지속적으로 되지 않다라구요.

고민 끝에 심리치료를 받겠다 결심을 하고 전화를 드려서 가겠다고 했지만

마음 한켠에선 심리치료 비용이 저를 꽉 잡아버리더라구요..

솔직히 너무너무 답답합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왜이러는지도 모르겠고 의지력이 없고 자신감이 없는것 같아요..

이곳 사이트의 글을 보고 공감이 가는 글을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성격장애 부분의 글도 저와 맞는 글들이 많구요..

아무튼 저는 정말 변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렷을때 상처를 받고 저스스로가 그대로 방치를 해버렸습니다.

왜그랬는지 저도 잘 이해가 안가네요.. 많이 놀란것이 장기간 지속되면

무기력해진다고 하죠. 제가 그랬습니다. 기억력도 많이 상실된것 같고...

너무 짜증나고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되네요..

이러면 안되고 나에게 상처를 주게된다는걸 알면서도 제가 제자신을

컨트롤 못하겠어요..

그럼 답변 부탁드립니다....

 

치료의 과정

 Y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을 해서 2년 정도 다니고 있으나 자주 삶에 의미가 느껴지지 않고 왜 사는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특이한 것은 그녀는 자주 악몽을 꾼다고 했다. 악몽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꾸어 오는 것으로 내용은 유사하다고 했다. 꿈 속에서 아버지가 무서운 얼굴로 하고 잡으려고 하고 Y양은 비명을 지르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도망을 가다가 아버지가 가까이 오면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나는 꿈이라고 했다. 지금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가끔 꾼다고 했다.

 Y양의 꿈의 내용은 단순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적대 감정이 원인이라는 것은 Y 양도 알고 있었다. Y양의 아버지는 Y양이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와 이혼을 하고 지금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인근에 혼자서 살고 있다고 했다. Y 양의 가족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Y 양과 고등학교를 이번에 졸업하고 군에 입대한 남동생이 한 명이 있고 이제 중학교에 다니는 남동생이 한명 이렇게 5명의 식구들로 구성되어있었다. Y양의 부모님은 Y양이 어린 시절에 늘 사흘이 멀다하고 자주 싸웠다고 했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는 날은 여김없이 싸움이 있었다. 아버지는 무능력자로 지금까지 생계는 어머니가 다양한 일을 하시면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고 자식들의 양육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고 Y양이 회고를 했다. 아버지는 폭력적이고 화나 가면 집안에 집기들을 집어 던지는 버릇이 있어서 부모가 싸우면 Y 양과 2살 어린 남동생은 늘 방 한쪽으로 도망을 가서 구석에 숨어서 바들바들 떨며 지냈던 기억들을 회상하면서 고통스러워했다.

 Y양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싫어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제대로 사랑을 준 적이 없었다고 했다. Y양의 유치원 시절에 찍은 사진을 보면 유치원 어린이들이 야외로 소풍을 갔는데 다른 어린이들은 같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데 자신은 다른 곳에서 혼자서 놀고 있어서 유치원 선생님이 데리고 있는 사진이 지금도 앨범에 꽃혀 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외톨이로 지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괴로워했다. 또 하나의 유치원 사진은 수영장에 갔는데 모두들 물놀이를 하고 있는데 자신은 다른 곳에서 혼자서 놀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들을 치료자에게 가지고 와서 같이 그 사진들을 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의 고통, 외로움, 분노를 이야기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유치원 사진 중에서 그녀가 잊지 못하고 있는 사진은 소풍을 가서 윗도리 옷을 잃어 버리고 위통을 벗고 동무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은 사진이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와 아버지의 무능력 때문에 어머니가 생계 유지 때문에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아주지 못하고 자랐던 환경 때문이었다.

 Y양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식당 일이나 호떡 장사 혹은 국수 장사 등을 전전하면서 해 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온 반면에 아버지는 늘 어머니가 하는 일을 방해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가 일을 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할 망정 해방꾼으로 기억되어있었다. 아버지는 늘 입에 욕을 달고 살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명절날이 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는 큰집에 제사를 지내려 가면 아버지는 언제나 큰집의 인근에 가면 가족들을 먼저 들어가라고 하고 자신은 늦게 들어왔고 형제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아버지가 불쌍하다는 생각들이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늘 다른 사람들이 버린 고물들을 주워와서 집에 쌓아두어서 가족들이 쓸데없는 물건이니 내 버리자고 하면 고쳐서 쓸 수 있다고 하면서 집 안에 쌓아 두었다. 나중에 온 집안이 고물 단지가 되어 버리곤 했다. 결국은 아버지는 고물상을 운영하게 되었고 그나마 어머니가 주로 운영을 하게 되면서 아버지는 이혼 후에 따로 분가해서 인근에서 고물상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Y양은 아버지의 옷차림은 늘 초라해서 몰골이 말이아니었다고 했다. 평소에는 고물상을 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명절이나 추석 때에는 옷차림을 단정히하고 정상을 했으면 하고 기대를 했으나 아버지는 큰집에 갈 때도 별로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늘 아버지는 Y양의 기대에 미흡한 아버지였다. 지금도 회사에 오가면서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 인근을 지나가게 되면 혹시 아버지와 만날까봐 모자를 눌러쓰고 아버지를 만나면 못 본체 하고 지나갈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Y양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쯤에 어머니가 방에 놓아둔 지갑에서 돈을 몇 만원 꺼내서 가지고 가서 동무들에게 과자나 전자 오락으로 사용했던 기억이 몇 번있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눈치를 채신 것같았지만 Y양을 다그치거나 처벌을 하고 않고 모르는체 하고 넘어갔었다고 했다. 그 때를 생각해보면서 왜 그 때 돈을 훔치게 되었는지는 그 때 친구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돈을 가지고 과자를 사주거나 돈을 주면 Y양을 좋아하고 놀이에 끼어넣어주었기 때문에 돈으로 환심을 산 것 같았다고 했다. 동무들 관계의 어려움을 돈으로 환심을 사려고 했던 것은 분명했다. 이후에 어른이 되어 엄마에게 왜 그 때 모르는체 했는지 물었을 때 엄마는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체 해서 다음에 또 습관이 되면 혼내주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고 했다는 말을 들어면서 그 때 몇 번 그런 일이 있다가 이후에 사라진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만약 그 때 엄마가 그 문제를 해결 하겠다고 처벌이나 강압을 사용했더라면 그 문제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고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다라고 해석을 해주었다. 어머니가 현명하게 대처를 한 것이었다. 어린이들은 한 두 번 실수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알고 참고 견디면서 그 어린이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관용을 배푸는 것이 문제의 해결에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Y양 스스로 인정을 했다.

 Y양은 가족들이 오손도손 정답게 같이 식사를 해 본 경험이 없다고 했다. 늘 아버지는 으르렁거렸고 자녀들은 그런 아버지를 피해서 도망을 다녔다고 했다.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어색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나 Y양의 기억에 1세 - 3세 사이에 아버지는 그래도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었다. 그 때 아버지가 사진기를 가지고 와서 늘 시간 있을 때마다 사진을 찍어 이것을 사진 첩으로 여러 권을 만들어준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때의 사진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대판으로 싸운 뒤에 서로 이혼을 한다는 합의가 있고 나서 아버지는 사진 첩을 끄내서 일일이 가족들의 사진들을 가위로 오려찢어 버리면서 나는 이제 이혼을 하고 영영 떠난다는 말을 하면서 사진을 찢업리는 것을 보면서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왜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애정으로 찍어준 사진들을 가위로 찢어면서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습니까? 그렇게 사진을 자녀들에게 없애면서 정을 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녀들의 마음에 심어진 이미지를 지워 버릴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Y양은 치료 시간에 울면서 아버지에게 대들 듯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는 그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아파서 아버지의 눈치만 보면서 말을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자신있어했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는 직접적인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Y양이 힘들었던 것은 어린 시절에는 남동생이 늘 자신과 같이 어울려 놀았으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누나에게 대들고 누나를 하인 부리듯이 하는 행동이 시작되면서 Y양은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남동생이 자신을 괴롭히고 폭력을 휘두른다고 호소를 했으나 어머니는 남동생을 제재를 하지 않았고 남동생은 누나에게 자주 폭력적이고 명령적이고 시키는 것을 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서로 몸싸움으로 자주 싸웠으나 남동생이 사춘기에 들어가면서 또 태권돌를 배운 이후부터는 누나가 힘에서 이길 수가 없어 폭력을 당하게 되었고 이것이 고등학교까지 연장되면서 Y양의 고통을 가중되어갔다.

 Y양의 남동생 역시 Y양처럼 대인관계가 좋지 못하고 자신이 학교 공부와 동료들 관계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누나에게 화풀이 풀었던 것이 분석 결과 밝혀졌다. 남동생이 화를 내면 아버지의 행동 스타일과 유사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부정적 감정들과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한 것과 유사했다. 결국 Y양이 남동생의 스트레스 해소의 표적이 된 것이었다.

 Y양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우울해지기 시작했고 이러한 고통스런 마음을 제대로 틀어놓고 이야기할 친구들이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남동생의 보호자로써 Y양이 남동생을 다독거려주고 챙겨주었으나 둘 사이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전까지는 서로 말을 별로 하지 않고 둘 다 서로를 미워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론적 과정

 Y양은 학교에서 친구가 별로 없었다. 동무들과 어떻게 대화를 하는지를 부모님한데서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유아기 때 부모님은 생계 유지 때문에 Y양과 신체 접촉을 많이 하고 대화를 시도했으야 했었으나 먹고 대소변하고 입는 것에만 신경을 썼지 정작 이야기를 주고 받고 서로 감정을 표현하고 자신의 내면의 욕구를 상대에게 알리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과 상상들을 상대에게 미주알 고주알 알리는 커뮤니케이션에 결함을 초래한 것이 이것이 사춘기와 사춘기 이후에 대인관계 형성에 결정적인 결함으로 작동하게 된 것이었다.

 Y양은 가끔씩 차를 타면 차밖에 차창에 환상적인 상상을 본다고 했다. 그것이 혹시 환청이 아닌가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들은 혼자만의 독특한 괴로움,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스스로 상상 속에 빠져서 자아의 조각남을 막으려는 자아 해체를 막으려는 ego의 방어적 노력임이 밝혀졌다. 이러한 해석에 Y양의 두려움은 사라졌다. Y양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상에서 스스로 자신이 창조한 상상을 눈으로 보는 마술적 상상들을 만들어낸 것임을 인정했다. 그 상상 속에 빠져 있으면 어떤점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즐겁다고 했다. 그 속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전지전능한 사람이 되어 기쁘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주 그런 환상에 빠져있었던 것이 밝혀지면서 실제 환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그 문제는 사라졌다.

 치료에서 Y양은 5살 때 남동생과 같이 놀다가 주차장에서 Y양의 구두가 한 짝이 주차장 지하에 떨어진 것을 남동생이 누나의 신발이라고 주워준 것이 회상되면서 어린 시절에 남동생과의 친밀했던 관계를 회상했다. 과거의 상처들을 하나씩 재연해서 그 때 표현하지 못한 느낌들을 하니씩 표현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기술을 배우게 했다. 내 생각과 느낌과 상상들을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하는 과정에서 신체의 긴장이 방출되고 불안이 감소하고 긴장을 해소 시키는 과정이 심리치료의 핵심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 속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적대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게 하였다.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편안하게 마음대로 이야기하게 했다. 그녀는 마음 속에 아버지의 적대 감정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싶은 분노, 노여움들이 아버지나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되지 못하고 억압되면 그것이 자아로 향하게 되어 자신을 미워하는 우울증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 두려움이 꿈 속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잡으려 오고 자신은 잡히면 죽게된다고 두려워 해서 도망을 가는 꿈의 내용은 Y양의 무의식을 그대로 반사시켜주고 있음을 알 게 했다.

 Y양의 아버지 역시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로부터 박탈과 학대의 피해자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Y양의 분노는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아버지 자신은 정작 그의 부모들로부터 무력한 사람으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인 것이 바로 아버지 자신의 자아가 아닌가! 가난이 대물림이 되는 것처럼 사람의 심리적 문제도 역시 자식들에게 대물림됨을 알 게 했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왜 다른 사람은 가정을 가지고 화목하게 살고 있는데 자신은 가족들과 이혼을 하고 혼자서 외롭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Y 양은 서러워했다. 그 대물임을 이제는 그녀가 끊어 버리고 자신은 부모님처럼 바보같은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을 했다.

 어린 시절에 특히 1세-3세 사이에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보호막이 되어주어야 한다. 자녀들을 안전하고 마음의 안정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형성하고 자아가 강한 세상을 상대해서 살아갈 수 있는 자아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이 내 세상인 된 것처럼 두려움이 없이 모험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실제로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외부의 스트레스로부터 자녀들을 막아주고 내면적으로 걱정 근심이 없이 불안이 끼어들지 못하고 보호해주어야 하는데 Y 양의 부모님은 오히려 자녀들에게 불안, 근심, 걱정을 집어 넣어준 꼴이 된 것이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제일 믿음직하고 우리 아버지가 최고가 되어야 하는 시기에 아버지가 Y양에게 오히려 폭력의 근원이 되었으니 꿈 속에서 아버지에게 붙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을 치는 장면은 아버지에 대한 Y양의 내면 심리를 그대로 잘 반사 시켜 표현해주고 있었다.

 Y양이 어린 시절에 자신이 학대 받고 공포 속에서 살아온 경험들을 털어놓고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악몽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Y양은 표정이 밝아지고 회사에서도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고 칭찬을 듣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남동생을 이해하게 되면서 남동생과의 거리감이 좁혀졌다. 과거에는 집 안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기를 어색해 했었는데 지금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남동생의 문제를 이해하게 되면서 남동생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동료들과 갈등 때문에 많은 시달림을 받았고 한번은 학교에서 옷에 똥을 씬 적이 있다고 울면서 하소연을 한 것을 기억해 냈다. 남동생이 군에 입대하기 몇 일전에 Y양이 가족들을 모이게 하고 같이 식사를 하자고 제안해서 한 턱을 쏘았다고 했다. 맥주를 몇 병 사 가지고 안주를 놓고 어머니와 남동생들과 Y양이 같이 앉아서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동생의 군입대를 축하는 가족 모임을 오래간 만에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남동생은 이제 밝은 표정으로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고 했다.

 

치료의 결과

 Y양은 치료자와 치료 시간에 나눈 이야기들을 집에가서 어머니에게 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자신의 감정 방출에도 좋고 대화를 하는 대화 기술에도 도움이 된다고 권장했다. 그녀는 치료를 받고 나서 그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소상하게 하게되면서 점점 표졍이 밝아져갔다. 어머니는 Y양이 치료 시간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고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엄마는 너희들이 어린 시절에 밥을 굶지 않고 헐벗지 않고 돈으로 학비만 보태주면 자녀들이 잘 자라는 것으로 알았다"고 미안해했다. 어린 시절에 같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사랑을 어떻게 전달하고 표현하는 것들이 자식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를 지금까지 몰랐다고 아쉬웠다.

 Y양은 지난 해 여름 휴가 때 혼자서 식장 생활 3년 만에 처음으로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그녀는 다른 친구들과 시간이 맞지 않았서 같이 가지는 못했지만 혼자서 유명한 휴양지에 가서 1박 2일로 다녀와서 심신을 깨끗하게 청소했다고 기뻐했다. 이제 친구들도 사귈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과거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연락에서 한번씩 만나는 계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표현하면서 신체적 긴장이 많이 해소되면서 어깨절림 현상과 소화 불량은 사라졌다. 직장에서 같이 근무하는 나이 많은 언니들과의 관계도 갈등이 많이 해소되면서 서로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게 되어갔다. Y양은 이제 경제적 문제가 허용되면 자신이 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미술 시간에 만들기와 디자인 분야를 더욱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는 포부를 내 비치기도 했다. 이제 지금까지 생각하지도 않았던 이성 문제에 관심도 가지게 되었다. 남동생은 몇 개월 전에 군에 지원해서 육군에 입대했고 군에 가서 보낸 편지가 집에 도착해서 누나로써 답장을 보내야겠다고 했다. 아버지 문제는 언젠가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상처 받았던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