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27세의 결혼한 부인으로 시부모와 남편과 갈등을 보이는 여성 환자 A씨

증세: 두 명의 전처의 딸을 둔 주부로써 자신과 남편 사이에 1살 된 딸이 있음

접촉: 인터넷으로 치료자에게 치료를 요청해 왔음

진단명: 우울증, 보드라인 성격장애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씩 2시간 분석 상담으로 1년 동안 치료를 받았으며 다시 6개월 동안 치료를 계속하기 위해서 준비중에 있음

치료 결과: 부인의 우울증과 불면증은 사라지고 , 남편과의 갈등이 줄어들었으며, 시부모님과의 갈등도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다. 특별히 2명의 전처의 딸과의 질투심을 다루고 있던 도중에 이사를 가게 되어 당분간 치료를 쉬다가 다시 계속해서 문제의 뿌리를 뽑고 싶어했다.

 

치료의 과정: A 부인은  치료자로부터 이붓 딸에 대한 즉 전처 소생의 두 딸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치료를 1년 동안 받고 있는 사람으로써 A부인은 남편보다 나이가 10세나 연하인 초혼의 결혼이고 남편은 4학년과 1학년에 다니는 딸을 둔 사람으로써 간호사였던 부인과 이혼하고 지금의 A부인과 재혼을 한 사람으로 음식점에서 메니저로 일을 하다가 서로가 좋아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6 개월 동안의 A부인의 치료 사례는 성격장애 치료 사례에서 상세하게 볼 수 있다.

치료 6개월 쯤에 A부인이 치료자에게 보내온 메일에서 치료자는 처음으로 A 부인이 심하게 우울하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불면증, 강박증, 남편과의 갈등, 시부모와의 갈등을 다루느라고 부인의 우울증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고 부인 자신도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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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부터 우울한 편지
보낸날짜 | 2007년 1월 01일 월요일, 오후 17시 34분 20초 +0900
보낸이
|  
받는이 | <jongmankim@hanmail.net>   추가
 
 

안녕하세요..

새해가 또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건강하세요..

선생님 덕분에 그동안 6개월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나를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 모르고 소홀히 대하며 살아온 세월이

후회스럽고 .. 속상할 뿐입니다..

선생님께 새해인사를 드렸지만..

전 새해가 그다지 새롭지도 .. 힘차지도..기대되지도 않아요..

왜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냥 새해가 되면 시골에 살던 초등학생의 저의 모습에만 그리움이 커지면서

..굳이 새해뿐이 아니라 명절이든..한계절이 끝나고 다른 계절이 돌아올때쯤에도

항상 기억과 추억으로만 현재를 살려고 해서 ..힘듭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현재는 결혼을 했고..자식도 있고..남편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 살아가는 힘..즐거움이 되어주지 못하는거 같아요.

되어주지 못하는게 아니라 제가 되주지 못한게 더 정확합니다.

신랑이 일하다말고 2007년으로 넘어가는 그 자정에 전화를 해서는 앞으로 잘할거고

사랑한다고 했는데도 ..전 그런말을 흡수할 줄 모르네요..

또 제 신세타령을 마구 하면서 정말 남보다도 더 못하게 신랑을 대우합니다..

그래놓고 또 후회하고..

치료를 받고 있는 지금..저는 왜 즐겁지 못할까요?

변화도 오고있고..그런데도 왜 자꾸 어린시절을 그리워하며...그때 들었던 노래들이

나오면 가슴이 아련하고..지옥같기도 한 그 시절로 다시 가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혼란스러워서 신랑한테도 아이들 한테도 웃어줄 수가 없어요..

내가 왜 이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아직까지 결혼생활은 낯설기만 하고..모순투성이에요

시댁식구들한테 마음을 열다가도 다음날이면 바로 닫아버리고..

언제 내가 너희들을 향해 웃었느냐 할 정도로 관계맺기도 힘들고..

책을 읽을래도 펼치는 순간 한장도 못넘기고..

모든것에 의욕이 없습니다..

무기력하고 의욕상실이 이렇게 생활 전반을 망치고 있는줄 몰랐어요.

새해부터 이런 글 쓰게 되서 쬐금 죄송합니다^^

남들 즐거울때 전 우울한게 특징이라서요..

치료받으러 갈때 말씀드려도 되는데..이런 마음들은

글로 표현하는게 더 전달이 잘 될거 같아서 편지 써봤습니다.

그럼 목요일날 뵐께요

 

 치료가 7개월로 접어들어가면서 A부인의 우울증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었다. A 부인은 남편과 결혼을 하기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백화점에서 점원으로 일을 2년 정도 한 적이 있고 그 백화점의 주인이 A부인 자신을 이용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 후에 옷 가계에서 약 6개월 정도 일을 하다가 그만 두고 6개월 정도 저축해둔 돈으로 휴식을 취하면서 영어 회화 학원에 6개월 코스를 등록해 놓고 다니다가 4개월 정도 공부를 하다가 중도에서 그만두고 우울해졌다고 했다. 이후에 음식점에서 일을 하다가 그 음식점에 메지져로 있던 지금의 남편과 만났고 지금의 남편은 그 때 이상적인 타입으로 완벽해 보여서 그만 반하게 되어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0살이나 차이가 나고 딸이 두 명이나 있는 남편과 망설이지 않고 결혼을 했다고 했다.

 부인은 상대가 자신을 이용한다고 생각되면 더 이상 그 사람과 말을 하지 않고 추론으로 자신을 이용하는 사람과는 더 이상 관계를 하지 않는다면서 관계를 끊어 버린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2번이나 직장 생활에서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아예 그 사람과 연락처를 끊어 버리고 전화가 와도 받지 않고 묵살해 버린다고 했다. 또 부인은 다른 사람과 차별 대우에 참을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시어머니는 전처 소생의 큰 딸은 귀여워하면서도 둘째 딸을 미워하는 것에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큰 딸은 아들인 남편을 닮았다고 좋아하고 둘 째 딸은 전처를 닮았다고 싫어한다고 공공연하게 말을 한다고 했다. 또 명절이되어 시가집에 가면 시부모님과 고모들은 (남편은 누나 1명과 여동생 1명이 있다) 아기자기하게 서로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친밀감을 도모하는데 며느리인 자신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분개했다. 어떤 행사 때마다 큰고모가 시어머니와 단짝처럼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눈꼴 사납다고 했다. 시집을 갔으면 독립해서 살아야지 큰 고모는 지금도 친정 부모님의 2층 집에 2층에는 부모님이 살고 그 집의 아래층인 1 층 집에 바른편 쪽에 고모 가족이 살고 있었다 (부인도 시부모의 2층 집의 1층의 고모네와 반대편 쪽에 살고 있음). 너무 어머니와 자녀들이 밀착되어 자녀들이 독립을 하지 못하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큰 딸 가족과 아들 가족이 함께 살고 있었다. 왜 부인이 차별 대우에 분노하고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에 적대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는 다음과 같은 분석에서 드러났다.

 A 부인은 어린 시절에 가축 양돈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살면서 언니와 여동생과 달리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고 했다. 아버지는 언니와는 끝임없이 싸웠다. 언니는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아버지에게 부당한 대우에 대들면서 싸웠다. A 부인은 아버지의 말이 부당해도 고분고분했기 때문에 얻어맞지는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둘째 딸인 A 부인에게 늘 양돈에 사용하는 약품들을 심부름을 시켰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명확하게 말을 하지 않아서 A부인은 약국에 가서 약품의 이름이 애매해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면 그것도 모르느냐면서 호통을 쳤다. 물어보지 않고 약품을 사가지고 오면 잘못되었다고 야단을 맞았다. 고로 늘 야단을 맞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한번도 아버지에게 내 의사를 정확하게 이야기해보지 못했다. 만약에 물어본다고 해도 아버지는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은 눈치를 보고 스스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부인은 직장에서 상사가 자신에게 부당하게 하는 것 같지만 직접 물어보질 못했던 것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제대로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6살 때 엄마는 이혼으로 집을 떠났고 할머니 밑에서 자랐으나 할머니 역시 A 부인에게 사랑을 제대로 주지 못했다. 할머니는 양돈을 하는 아버지의 일에 찌들려 제대로 시간을 낼 수도 없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상대가 자신을 이용하는 것 같아 보여도 실제로 이용을 하는지 아니면 자신이 그렇게 느꼈는지를 직접 물어볼 수 없어서 스스로가 판단을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것으로 많은 불이익을 당했다. 즉 직장을 그만 둘 때 받지 못한 임금은 포기를 해야 했다. 받지 못한 임금을 달라고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또 부인이 차별 대우에 참을 수 없었던 것은 A부인의 세 자매가 명절 때 친가를 방문하면 항상 아버지는 큰 집의 딸들 한데는 "우리 공주님" "예쁜이" 하면서 온갖 아양을 떨었으나 정작 자신의 딸들 한데는 늘 하는 말투가 "이년아--, 저년아--"라는 욕지껄이가 전부였다고 했다. 큰 집에 가면 자신들은 늘 푸대접을 받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딸들을 그렇게 대우하니 큰 아버지, 큰 어머니, 큰 집 형제들도 자신들에게는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 것 같았다고 했다. 한 번은 큰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식사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밥과 국과 수저를 다 챙기고 있는데 A 부인의 자기 앞에는 밥도 국도 수저도 없어서 다른 사람들은 밥을 먹고 있는데 자신은 한마디도 못하고 그냥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큰 어머니가 그것을 알고 챙겨 주어서 먹게 되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없으니 큰 집에 가도 누가 자신들을 챙겨주지 않았고 사촌 형제들과도 친밀하게 지내지 못했다고 했다. 아버지의 부당한 차별 대우에 어린 시절부터 분노하고 적대 감정이 쌓여있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상대가 배려해 줄 때까지 기다래는 것이 A 부인의 분석에서 드러나게 된 것이다.

 A 부인은 늘 우울하다고 했다.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왔으나 마음 속에서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치료자는 평소에 부인이 무엇을 생각하면서 지내느냐를 분석해 보기로 했다. 부인은 현재 1살이 지난 딸을 양육하면서 집안 살림을 살고 있는 전업 주부였다. 시간이 나면 집안 청소와 빨래를 하루에 한번씩 하고 있고 빨래는 속 옷과 겉옷들을 따로 분리해서 하루에 1번씩 빨래를 하고 매일 같이 청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약간의 강박증이 있었다. 빨래는 분리하지 말고 함께 하고 매일 같이 해서 에너지 고갈을 초래하고 청소는 남편에게 맞기고 휴식을 가지도록 하였다. 또한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 4시 경에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야 잠이 드는 불면증과 밤에 두려움 때문에 불을 환하게 켜 놓아야 안심을 하는 두려움의 증세는 치료 6개월이 지나가면서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늘 긴장이 되고 짜증이 나고 화가 누적되어있다고 했다. 치료자는 평소에 부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지내는지 분석해 보았다. A 부인은 시간이 나면 늘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고 했다. 또 혼자서 각종 상상에 빠진다고 했다. 외국의 남자들과 데이트를 하거나 영화 속에 외국 남자들을 생각하면서 상상의 세계 속에 빠진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즉 A부인은 백일몽에 빠져서 그 속에서 일종을 즐거움을 얻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람들은 현실이 고통스러우면 백일몽에 빠져서 현실의 고통을 잊어 버린다는 것은 이미 정신분석에서 다루고 있어서 A 부인의 어린 시절부터 늘 즐기던 백일몽을 추적해 보았다. A 부인은 6살 때 엄마를 잃어 버렸다. 엄마는 아버지가 의처증으로 어머니를 의심해서 매일 같이 휘두르는 폭력에 감당을 못해서 떠났다고 했다. 할머니 밑에서 자랐으나 할머니는 늘 양돈 사업을 하는 아버지 일을 거들어주느라고 A와 놀아줄 시간도 없었다. 여름이면 어린이였던 A 부인은 늘 혼자서 외롭게 놀았다고 했다. 언니는 학교에 가거나 옆에 없었다. A부인은 한 여름에 너무나 조용해서 지루하고 견딜 수가 없어서 개미들이 모여있는 개미 집에 물을 붓거나 개미들을 밟아죽이는 행동을 했다고 했다. 이후에 개미 공포증 때문에 고등학교 때 방 안에 흘린 음식에 개미가 새까맣게 모여있는 것에 겁이 나서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치울 때까지 방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A 부인의 상상은 늘 자신이 신데델라처럼 환상에 빠져서 외국의 미남자들과 사귀는 상상을 즐겨 했다고 했다. 항상 외국을 여행하는 것을 상상했다. 그래서 A부인의 꿈이 외국 여행을 하는 것이 그녀의 소원이었고 자신의 e-메일을 "배낭 여행"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분석에서 A 부인은 백일몽 속에 빠짐으로써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고 한 것이 결혼을 한 지금도 습관적으로 시간만 있으면 혼자서 백일몽에 빠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특별히 백일몸이 많아질 때가 주변이 조용하고 한가하면 더 많이 빠지는 것이 밝혀졌다. 즉 A 부인은 조용하거나 고요하거나 한가한 것을 견딜 수 없다는 점이었다. A 부인은 이것이 무의식적이기 때문에 부인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엄마를 잃고 나서 지루한 한 여름에 고통스러웠던 것 때문에 또 시골에서 늘 혼자서 외톨이로 자랐기 때문에 조용하거나 한가하면 견딜 수 없어했다. 그래서 온갖 백일몽에 빠져서 스스로 마음을 자극해서 흥분을 하게 만들었다. 쉽게 말하면 조용하면 죽은 것처럼 느껴져서 스스로 백일몽을 통해서 흥분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온갖 상상들이 흥분을 불러 일으키고 자아를 살아있게 만든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들은 어린 시절에 지루한 참을 수 없는 조용함, 변화가 없는 늘 똑같은 자극에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각종 상상을 통해서 스스로를 자극 시키는 것은 그 때는 효과가 있었으나 지금은 어른이 되어서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외로움을 백일몽을 통해서 습관화된 버릇 때문에 오히려 긴장 이완을 막아 버린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긴장이 이완되지 못하고 늘 흥분 상태를 유지하려는 습관이 우울함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부인은 모르고 있었다. A 부인은 혼자 있거나 외로우면 늘 백일몽에 빠진다는 것을 시인했다. 그녀는 그 상상 속에 빠지는 것이 백일몽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습관을 이제야 알 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백일몽에 빠질 것이 아니라 조용함을 즐길 수 있으야 함을 알 게 되었다. 휴식이 없는 생활을 해 온 것이었다. 결혼 후에 2년 동안 늘 그렇게 습관적으로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몸은 휴식을 제대로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늘 A 부인은 가족들이 잠을 자는 밤이 되면 (남편은 야간 업소에서 밤에 일을 하고 낮에는 잠을 자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조용해지면 참을 수 없고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어린 시절이 반복되고 있음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밤 11시-12시 경에 주로 다규멘트리나 잔인한 폭력 영화, 귀신 영화 등을 대단히 좋아했다. 그녀는 그런 자극을 통해서 조용함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동시에 불안이 증가하게 되면 흥분으로 잠을 자지 못하게 되고 반대로 조용해지면 자아의 죽음을 느끼는 것이다. 고로 낮에는 백일몽으로 밤에는 자극적인 영화를 통해서 자신을 살아있게 만들기 위해서 흥분을 스스로 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이후부터는 백일몽과 밤늦게 보는 잔인한 영화, 홍수, 혹은 자연재난의 다규멘트리 영화는 보지 않게 되었고 그녀는 조용한 것을 즐기고 휴식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우울증은 점점 사라져갔다.

 A 부인은 처음에 치료자를 찾아왔을 때 그녀가 제일 먼저 고치고 싶은 것은 큰 딸과 남편 사이에 친밀관계 때문에 질투심을 불러 일으켜서 남편이 딸에게 사랑을 주는 행동을 금지 시켰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딸의 손을 잡거나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면 질투심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서 분노가 폭발해서 남편도 딸도 그냥 두지 않고 끝없는 화풀이를 하게 된다고 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다. 왜 아버지와 딸 사이에 친밀감에 참을 수 없어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분석은 치료 초반기에도 분석이 시도 되었으나 다른 문제들에 밀려서 심층 분석이 되지 않았다. 치료 9개월 쯤에서 본격적으로 심층 분석에 들어갔다. A 부인은 남편과 약 2년 동안 사귀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남편이 전처와 별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과 딸이 두 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사귀었다고 했다. 한번은 A 부인의 방에서 남편이 놀러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와서 지금 딸들이 몸살이 나서 몸이 아파하니까 집에 와서 자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전화가 왔다고 했다. 그 때 부인이 느낀 것은 시어머니가 A 부인과 함께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질투심 때문에 집으로 불러 들인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A부인은 남편을 보내주면서 대단히 불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에게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다음에 A 부인은 결혼을 전제로 하고 남편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남편과 A 부인이 같이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큰 딸이 A 부인과 아버지 사이에 끼어들어와서 아버지로부터 A 부인을 가로 막아서 아버지의 주의 관심을 끌려고 했다. A 부인은 딸이 자신을 고립 시키려고 하고 따돌리려고 하는 것을 느꼈다. 그 때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딸이 아버지 무릎에 앉으면서 아버지에게 결혼을 할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아버지를 빼앗으려고 한다는 것을 A 부인이 느꼈다고 했다. 그 이후부터 A 부인은 남편과 결혼하기 전부터 딸과 관계를 단절시키려고 했다. 남편에게 딸과 가깝게 지내지 못하게 딸과 함께 있는 것조차 딸과 다정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 질투심 때문에 참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A부인은 남편이 딸에게 가까이 갈 때 섹스적인 추행의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남편이 딸을 성적으로 추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서고 딸과 친밀함이 자신이 배제되고 외톨이가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딸들과 갈등으로 결혼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은 남편은 핏줄인 딸을 선택할 것이고 자신은 전처처럼 쫓겨날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둘째 딸은 조금 낮은 편이나 큰 딸의 경우가 더 A 부인의 질투심이 심하다고 했다. 부인은 그 원인을 알고 싶고 어떻게 하면 그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결혼 전부터 이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에 남편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혼생활과 가족생활에 파란이 예고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론적 근거

A 부인의 질투심 밑에는 어린 시절의 오디프스 갈등이 깔려 있었다. 6세 때 엄마가 집을 떠나갈 때 세 명의 딸들과 이별을 할 때 부인 A는 6살로 그 때 엄마의 상실에 그렇게 슬퍼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에 엄마의 상실에서 오는 슬픔은 별로 없었다. 언니는 아버지와 앙숙으로 늘 싸웠고 여동생은 어렸기 때문에 아버지와 관계에 끼어들지 않았다. A 부인은 엄마의 빈 자리를 자신이 채우고 있었다는 치료자의 지적에 동의를 했다. 어머니의 빈 자리에 A 부인이 대신해서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의 부인이 된 것이었다. 이 시점에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오디프스 콤프렉스의 기간이다. 이유는 이 나이에 딸들은 어머니와 경쟁을 해서 아버지와 더 가깝게 아버지 사랑을 더 많이 받으려고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엄마가 집을 떠나게 되었고 A 부인이 엄마 자리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된 것이었다. 이후에 치료자의 이런 분석은 이것을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A 부인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항상 심부름은 욕을 얻어먹었지만 A 부인이 도맡아서 해 왔다. 또 아버지 옆에서 자면서 아버지가 A부인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서 A의 음부를 만졌다고 했다. 그 때 A 부인은 자신이 아버지를 즐겁게해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성폭행은 없었지만 늘 옆에 누워있는 딸에게 속 옷 속으로 손을 넣어서 음부를 만졌다고 했다. 이것은 초등학교 시절에 약 2년동안 지속되었다고 했다. A 부인이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거나 아버지에게 거부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두 번째 증거는 A 부인이 여동생을 엄마처럼 일일이 간섭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6학년에 된 여동생이 전학 온 여자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서 그 때 중학생이던 A 부인이 여동생의 귀가 시간과 모든 행동을 일일이 통제하기 시작했다. 여동생에게 엄마로써 간섭을 하게 되었다. 이 간섭은 A 부인이 결혼을 하기 전에 남편될 사람과 사귀면서 관심이 사라지게 되었다. 여동생은 중학생이 되면서 여자 친구와 어울리면서 담배와 술을 배우고 학교에 결석을 하게 되면서 더욱 감시가 심해졌다고 했다. 여동생은 언니의 이런 감시 때문에 학교 생활에서 너무나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최근에 A 부인에게 원망을 많이 토로 한다고 했다. 세 번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A 부인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와 할머니 집을 나와서 언니와 자치 생활을 하게 되었고 토요일만 되면 아버지의 돼지 양돈장에 돼지 똥을 청소하러 여동생과 함께 가서 몇 시간 동안 더러운 돼지 집의 안을 청소해왔다고 했다. 이 청소 작업은 결혼을 하기 전에 아버지가 양돈 사업을 청산할 때까지 매주 토요일에 아버지 집에 와서 일요일마다 계속되었다고 했다. 그 청소 작업에는 반드시 여동생을 동참시켰다고 했다. 청소가 끝나면 아버지는 A 부인에게 몇 푼되지 않는 생활비용을 그것도 그냥 칭찬으로 주는 것이 아니고 던져주었다고 했다. 조금 더 달라고 하면 욕질부질 하면서 제대로 주는 적이 없어서 그냥 참고 온다고 했다. 언니는 이러한 돼지 울막 청소 작업에 한번도 간 적이 없다고 했다. A 부인이 스스로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오디프스 콤프렉스가 어떤 문제점을 A 부인에게 안져주었는가? A 부인은 엄마의 자리를 대신 차지해서 무엇을 잃었는가? 오디프스 콤프렉스는 프로이드의 신경증 이론의 핵심이다. 즉 자녀는 이성 부모를 더 좋아하게 되지만 엄마, 아빠의 처벌 때문에 이성 부모를 포기하고 사춘기가 되면서 이성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면서 오디프스가 끝이난다. 건강한 사람은 오디프스를 포기하면서 좌절에 참을성이 생기고 자신의 야심 즉 엄마, 아빠를 차지하겠다는 소망을 포기하게 된다. 엄마, 아빠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엄마, 아빠 자리를 양보하고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엄마, 아빠의 자리를 차지하게되면 어떻게 되는가? 오디프스의 비극은 엄마와 아빠와 섹스 관계가 일어나거나 너무 엄마, 아빠와 가깝게 되거나 혹은 성적 유혹을 받게되면 평생 동안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 이성과의 관계에서 문제로 다시 등장하게 된다는 뜻이다.

 A부인은 무의식적으로 엄마의 자리를 차지했다. 고로 엄마의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아빠로부터 이성적 희롱적인 섹스 유혹을 받았다. 음부를 만진 것은 아버지가 딸을 성적 대상으로 본 것이다. 또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기분좋게 해준다는 생각이 A 부인한데 있었다. 고로 A 부인은 좌절에 참을성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A 부인은 항상 경쟁에서 이겨야했다. 남편이나 언니, 여동생들과의 말다툼에서 절대로 진 적이 없다는 것이 이것을 증명한다. 자신의 의견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지만 마음 속에서 늘 분노와 적대 감정을 가지고 살아왔다. 한번 화를 내면 남편이나 여동생에게 계속해서 분노와 적대감정이 폭포수처럼 텨져나왔다. 남편에게 화가 나면 "이 새끼, 저새끼---"등을 욕설이 난무했다. 분노를 컨트롤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을 꺾고 참고 상대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디프스의 승리가 이것을 뒷받침해준다.

 A 부인이 오디프스에서 승리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을 A 부인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딸 사이에 관계를 섹스 관계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과거가 전처의 큰 딸과 아버지 관계에서 다시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큰 딸은 엄마가 이혼으로 물러 났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려고 하고 있다. A 부인의 과거가 새로 다시 등장한 것이 아닌가!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경험한 것이 재 등장하고 있음을 부인은 치료자의 해석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큰 딸은 A 부인의 과거의 경험과 똑 같지 않는가! 자신이 승리했던 것을 이제는 패배로 양보할 수가 없는 것이다. 큰 딸과 아버지 관계가 섹스 관계로 보인다는 것이 이것을 말해준다. A 부인은 딸과 아버지가 친밀관계를 나누는 것은 섹스 관계가 아니고 자연스러운 관계이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딸을 더 좋아하고 어머니가 아들을 더 좋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유는 자신이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머니를 밀어내고 아버지를 쟁취하는데 성공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을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치료의 결과: A 부인은 드디어 소망했던 남편의 독립을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녀와 남편은 시부모님의 1층 집에서 따로 독립을 해서 나오게 되었다. 남편은 옆방에 살고 있는 큰 누나(A부인의 고모)의 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해오다가 이번에 자신의 음식점을 차려서 독립해서 나오게 되었고 집도 시부모님의 1층 집에서 이사를 나와서 자신들의 음식점 옆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 때문에 치료를 당분가 쉬고 싶어했다. 부인은 이사 후에 다시 치료를 계속해서 큰 딸에게 대한 질투심을 뿌리 뽑겠다고 했다.

1년 전에 부인이 처음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요청했던 메일의 내용과 1년 후에 이사 때문에 잠시 치료를 중단하면서 부인이 보낸 편지를 한번 비교해 보자. 얼마나 부인이 변화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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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받고 싶습니다. 제목검색 ?
보낸날짜 | 2006년 6월 14일 수요일, 오후 23시 23분 58초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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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이 | <jongmankim@hanmail.net>   추가
 
 

안녕하세요

사실 저는 교수님께 메일을 한번 보냈던 여성입니다.

일년 반 정도 된거 같네요.

이후 교수님께 연락이 왔었는데..이미 다른상담소를 찾아 상담을 받고 있었습니다.

 

치료는 일년 정도 받았구요..

 

진전이 없고..스스로 확신이 흐려지면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정말 문제를 나열하기조차 힘들고 혼란스러울 정도로

너무나 많아요..

 

우울증에 대인기피..대인회피..성격장애

불안증....죄의식...창피함...난폭함..조절 못하는 분노...감정

 

이로써 결혼 생활이 너무 힘듭니다.

우선..

신랑이 없으면 불안해서 그 불안은 싸움으로 의심으로..난폭과 욕설로 갑니다.

신랑이 회식이 있으면 정해진 시간안에 꼭 와야하고

술을 많이 먹거나 늦는다면 어김없이 욕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너무나 너무나 힘듭니다

결혼전에 이같은 일로 제 스스로도 힘들고 지금의 신랑도 잃게 될까봐서 치료를 요청했었어요

신랑이 한없이 불쌍하고 가엾다가도 한순간에 쓸모없고 ..날 버릴거 같고..벌레같이 느껴집니다.

심한 분노와 함께 욕설..어쩔땐 난폭하게도 변하고요..

다행인건 이런 모든 문제를 신랑이 이해하든 어쨌든..모두 털어놓고 대화를 한다는것이고

서로 많이 사랑한다는 것이지요..

이 사랑을 지키고 .. 가정에 평화가 왔으면 합니다.

 

또..

대인관계가 되지않아 시집에 들어와 사는 일년내내 불편하고 괴로워요

우선 사람을 대하는데 두려움이 앞서구요..말할때 긴장하면서 그런 자신을 향해

화가 나면서 상대방에게도 화로써 방어를 합니다.

예전엔 그냥 창피하고 말았는데..최근 3~4년 동안 분노가 극에 달해있습니다.

 

일년내내 친구한번 제대로 못만나고..시어머니..시누들 .. 시댁 식구들 대하는게 지옥입니다.

 

감정이 왔다갔다  좋을땐 불쌍한 감정에 휩싸이고..싫을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요

 

언제나 그래왔듯이 삶이 무의미하고 꿈은 원대하고 하고싶은건 많지만...

성격이 따라주질 않아요..

아무것도 못하겠어요..시도를 하는것에 두려움이 강합니다.

꿈도 항상 의미있게 꾸고...일어나면 항상 꿈을 해석하려 합니다.

물건을 살땐 결정을 못해 머리가 다 아플정도고..

가벼운 것이든 판단과 결정에 약합니다.

항상 분노는 상대를 향해 있고....

아이를 낳은지 몇달 안되는데..또 제가 이혼남과 결혼을 하여

그 밑에 딸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제가 어렸을적 아버지한테 받아온 교육방식대로

아이들을 대하고 있고..상처도 또한 많이 입힙니다..

고치고 싶어요..

아이들과 있을때 엄마인데..신랑이 중간에 끼면 경쟁자로 바뀝니다.

손잡는것도..얘기하는것도...챙겨주는것도..웃어주는것도..못하게 합니다.

그랬다간 신랑을 가만두지 않습니다..때리고 욕하고..어떻게든 정당화 시킵니다..

그런 저를 신랑은 이해하고 참아주고 있습니다.

다 잘못된건 알겠는데...아이들한테 질투가 너무도 강하고..심하고.. 너무 괴로워요..

같이 살지만 아이들은 아빠와 격리되어 있어요...

교수님 이밖에도 전 너무 불안합니다.

어두운게 싫고 혼자 자는게 무섭고..화장실이든 방문이든 문이 닫히는게 두려워요..

두려움에 휩싸일땐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마음속에서 분노가 일어나는걸 느껴요...

놀라기도 잘 놀라고..놀라면 어김없이 분노가 따릅니다...

극에 달해있어요..저 치료 꼭 받고 좋아지고 싶어요 그래서 내 아이..그사람 아이들

잘 키우고 싶어요..

주절주절 늘어놓았는데.. 부모님 얘길 안했어요

그건 너무 너무 많아서 글로 다 표현을 못합니다...

교수님 저는 형편이 그리고 좋은 편이 못되요

그냥 성실하고 착한 우리 신랑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받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여..

교수님을 믿고 신뢰해도 되겠지요..

그럼 짧은 글이라도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치료를 받을려면 저희 신랑과 시간과 날짜를 맞춰야 하거든요

신중하게 대화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교수님의 짧은 답장이라도 기다리겠습니다.

 

다음의 편지는 부인이 이사 때문에 당분간 쉬면서 이사 후에 다시 치료를 재개하고 싶다고 보낸 메일이다.

선생님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걸..
새삼 느끼는 요즘입니다..
선생님은 제가 왜 오지도 않고..오지 않는 이유를 전화로
알리지 못하고 은둔(?)하는지 아실거라고 믿음을 갖고 있어요^^
이사가 급하게 결정이 났고..8월 19일날 이사를 합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그 다음 문제라..저희 신랑하고 쉽게
타협이 되지 않아서 잠시 치료를 중단하게 되었어요..
많은 도움을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는 마음 전하고 싶은데..
전화도 못드리고 죄송합니다..
이사가 끝나고..정돈이 된 후..마음을 가다듬어..다시 치료를
받을 생각이지만(제 생각) 신랑은 가게 장사를 지켜보자는 생각입니다.. 치료의 끝을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기에 희망을 갖고
시간을 조금 갖겠습니다..언제든 다시 찾았을때 선생님께서
저의 모든 이야기를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저를 맞아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럼 다시 뵙길 바라며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