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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드(Freud)는 멜랑꼴리아와 조증을 둘 다 무의식적 콤프렉스와 씨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Ogden, 2005). 그러나 차이점은 조증 상황은 멜랑꼴리아와 정 반대가 된다는 것이다. 멜랑꼴리아의 반대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조증이다. 고로 정신분석에서는 조증을 멜랑꼴리아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본다. 조증은 멜랑꼴리아와 정 반대적 행동 특징을 보인다. 즉 이 세상에서 자신이 최고가 된다. 나르시즘적 피크에 있다. 전지전능하다, 이 세상에서 안 되는 것이 없다.

 에너지 고갈로 두문불출이 특징인 멜랑꼴리아와는 반대로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조증 환자들은 실제로 잠을 2시간-3시간 박에 자지 않는다. 그래도 에너지가 왕성하다, 우울증으로 고갈되어 억제된 에너지가 뚝이 터져서 홍수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대단한 발명을 했다고 주장 하면서 이것을 청와대에 가지고 가면 당장 발명왕이 된다고 주장한다. 새벽 2시ㅣ-3시에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그 전화가 응급 전화인 경우에는 이유가 타당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하찮은 전화이기 때문에 전화를 받은 사람은 상대가 돌 아이 즉 정신이 돌았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끊임없이 말을 혼자서 지껄이는 말찬지가 특징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없다. 고로 무리한 돈을 사업한다고 투자를 하거나 어떤 일을 벌이려고 시도를 한다. 여기에서 이것을 시도하려는 조증 환자와 이것을 막으려는 가족들과의 갈등이 피크를 이룬다. 조증 환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막으려고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고로 폭력적이 된다.

사례: 20대 후반의 간호사가 자신이 며칠 후인 29일에 휴거를 한다고 가족들을 옆에 오지 말 게 한다. 특히 아버지가 자신의 옆에 오면 불에 타 죽는다고 옆에 오지 말 게 한다. 아버지는 이 조증 환자인 딸에게 상처를 준 장본인이다. 환자는 중학교 때 전교에서 3등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치마 바람을 일으키면서 학교에 들나들었던 시기로 엄마는 자신의 친구의 딸은 2등을 했는데 왜 너는 3등 박에 못했느냐는 질책을 잊어 버리지 못한다. 늘 싸우던 엄마와 아빠는 이 여성이 중학교 2학년 때 별거를 했고 엄마의 빈 자리를 이 여성 환자가 채우게 되었고 가족들의 밥, 빨래, 오빠와 남동생 돌보기 등으로 공부가 뒤로 밀리게 되었고 대학 진학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후에 우울해졌고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조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교회에 다니다 지금은 그만 두었으나 어느 날 자신에게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교회에 다릴 때 좋아했던 오빠가 지금은 결혼을 해서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데 그 오빠를 찾아야 한다면서 갑자기 그 도시로 가기로 하고 기차를 탄다는 것이 다른 지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게 되었다. 그녀는 그것도 하나님의 계시로 보았다. 엉뚱한 도시에서 내린 그녀는 도시가 낯설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공황 상태가 되었고 택시를 탓으나 횡설수설로 수상히 여긴 택시 운전사가 아버지의 전화 번호를 알 게 되어 장거리 전화를 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요청으로 그 택시 운전사에 의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 그녀는 조증 증세로 며칠 후에 휴거를 해서 하늘로 올라가는데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 한다면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하자 아버지와 동생에게 붙잡혀 감금 상태로 있다가 자신을 붙잡으려 온다고 3층에서 뛰어내려 골반에 골절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골절 치료를 한 후에 정신병원의 패쇄 병동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더욱 더 상세한 것은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프로이드(Freud)는 조증 환자와 멜랑꼴리아의 차이점을 멜랑꼴리아 환자는 ego가 그 콤프렉스에 항복을 한 것이고 즉 붕괴되어진다는 고통스러운 형태로 그 콤프렉스에 항복을 한 것이고 조증 환자는 ego가 그 콤프렉스를 마스터 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조증에서는 ego가 상실의 고통을 마스터 한 것이다. ego가 옆으로 밀려나는 것을 마스터 한 것이다. 이것은 가난뱅이가 복권에 당첨된 것으로 비유를 할 수 있다. 끼니를 걱정해 오던 가난뱅이는 어느 날 거액의 복권의 당첨으로 모든 고통이 일시에 한방으로 날려보낸 것에 비유를 할 수 있다. 갑자기 하루 먹을 걱정에서 해방되어 벗어난 것이다. 마술적 소망을 가지고 싶다는 열렬한 소망이 마침내 성공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자신이 억압된 강박을 한 순간에 날려 버린 것이다. 한 순간에 환희에 빠져 버린다. 조증은 자아 속임수적인 전지전능함을 현실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 승리를 한 것이다.

 그러나 조증 환자에게는 그것이 문제의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그는 조증 상태에서 전지전능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나르시즘의 피크 상태가 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 최고가 된 것이다. 그는 불사조가 된 것이다. 죽음이 없는 영원한 삶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로 과거의 고통을 한 방에 날려보낸 것이다.

 그는 외부 세계와 단절이 되어 내면의 세계 속에서 살 게 된다. 고로 현실 감각이 없다. 외부는 철저히 단절되어 버린다. 고로 자신 만의 환상의 세계에 살 게 되고 그것은 결굴 망상이 되어 버린다. 고통을 스스로 말로써 상징적으로 풀어 내려고 하기 보다(건강한 애도의 과정)는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그 고통을 진실되게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피해 도망을 가 버리는 것이다. 고통을 말로써 표현해서 풀어내거나 고통을 가지고 사는 것 즉 고통을 심리적 작업으로 풀어내는 것이 바로 건강한 사람들의 애도의 과정이다.

 대조적으로 멜랑꼴리아 환자는 상실과 고통을 마스터해 버린 결과로 조증이 된다. 즉 멜랑꼴리아 환자는 공포스러운 실망의 느낌을 혼자임과 무능력한 분노를 즐거움, 환희, 승리와 유사한 상황으로 형태를 바꾸어 버린 것이 조증 환자이다. 쉽게 말하자면 심한 우울증 환자인 멜랑꼴리아가 문제 해결을 한다는 것이 극에서 극으로 밀어 버린 결과이다.

 고로 너무 쉽게 문제 해결을 한 결과 또 다른 문제를 낳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환자인 본인들을 모른다. 이러한 과정을 프로이드가 내면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여기에서 프로이드(Freud)는 조증과 멜랑꼴리아가 정신증적인 낭떠르지에 와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멜랑꼴리아나 조증이 둘 다 정신증적인 면은 애도의 회피와 관계되어있음을 볼 수 있다. 외부 현실을 다루기를 회피한다는 것과 관계되어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ego의 쪼갬이라는 수단으로써 그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ego의 수 많은 쪼갬은 시간과 무관하게 상징적인 이미지적인 내면 대상관계의 창조와 연결되어있어서 이런 현상이 가능해진 것이다.

 좀더 전문적인 설명을 해 보자. 이미지적인 내면 대상 관계가 전지전능하게 실제 외부 대상관게의 상실을 대신하게 된다. 실제 외부 대상 세계를 상상 속의 무의식적 내면 대상관계로써 대체시켜 버린다. 고로 전지전능함이 절망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지나간 시간의 피할 수 없는 현실 즉 아까운 시간을 불멸의 시간으로 대체 시켜 버린 것이다. 불사조로 대체시켜 버린 것이다. 죽음을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조로 불멸로 대체 시켜 버린 것이다. 절망을 승리로  바꾼 것이다. 경멸이 사랑으로 대체 되어 버린 것이다(Ogden, 2005).

 프로이드(Freud)는 조증의 논의를 통해서 대상관계 이론의 진화에 중요한 요소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Ogden, 2005). 조증 환자의 승리, 환희는 상실의 고통을 밀어내어 버린 것이다. 실제 상실에 대한 마음이 만들어낸 이미지적인 승리이다.

 조증 환자의 무의식적인 내면 대상 세계는 회피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증 환자의 말잔치, 혼자서 하는 수 많은 말들이나 이야기들은 상실과 죽음의 외부 현실로부터 도망을 원해서 만들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외부 현실로부터 도망으로 말 잔치를 하는 것은 수 많이 말을 지껄이는 것은 실제 외부 대상과의 관계에서 살아온 삶에서 환자를 떼어내어 전지전능한 사고 쪽으로 환자는 던져 넣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 결과 개인의 무의식적 내면 대상관계로부터 외부 대상관계는 단절의 결과로 외부 대상 세계는 고갈되어 버린다. 외부 대상 세계에서 얻은 환자의 경험은 끊어져 버린다. 무의식적 내면 대상 세계 속에 환자는 휩싸여 버린다. 이 무의식적인 내면 대상 세계는 외부 대상들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버린다. 고로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가 없다.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가 없다.

 조증과 멜랑꼴리아에 결려들지 않는 건강한 사람은 애도를 할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삶과 죽음의 투쟁 속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데 성공을 한 사람이다. 이것이 멜랑꼴리아로부터 자신을 해방 시킨다. 애도는 ego로 하여금 대상이 죽었다고 선포함으로써 대상을 포기하도록 촉진 한다. 그리고  ego가 계속해서 살아가도록 유도를 한다. 대상의 죽음의 현실을 애도하는 사람이 고통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왜냐하면 애도를 하는 사람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 자신의 삶이 즉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한 자신의 능력이 위태로워지지 때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Ogden, 2005).

조울증에 대해여

 조증과 우울증이 합해진 조울증은 즐거움과 소동, 분노의 상태와 슬픔의 상태가 통합되어있다. 즉 조울증은 조증과 우울증의 혼합으로 나타난다. 조울증과 우울증은  그리스 시대부터 있었다. 호머(Homer)는 서사시 일리아드(The Iliad)에서 아가메몬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하면서 조증(mania)을 사용하고 있다. 조증은 그리스어로 분노(wrath)라는 뜻이다. 즉 그리스어로 조증인 mania는 영어로 분노 즉 Wrath이다. 조증과 조울증은 신의 힘이 아닌 의학적 사고로 본 것은 그리스 시대부터 2세기-3세기 경이었다. 의학의 아버지인 하포크라테스(Hippocrates)가 과학적 정신으로 의학을 정리해 놓았다(Georgotas Cancro, 1988).

 히포크라테스는 정신 현상에서 신의 힘을 배제 시켰다. 뇌를 모든 감정의 근원으로 보았다. 그리스 시대 즉 기원전 (B.C.) 4세기 경에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심한 우울증인 멜랑꼴리아(melancholia)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 최초의 객관적인 병의 진단이 되었다. 그는 멜랑꼴리아라는 뇌에서 원인으로 된 것으로 검은 슬깨즙의 과다로 생간 병이라고 진단하였다. 심한 독물질이 창자와 비장에 쌓였다가 그것이 뇌를 이상하게 한 것으로 보았다. 즉 멜랑꼴리아는 검은 분노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쓸개(bile)라는 말과 분노(anger)는 동의어이고 검은(black)이라는 말과 분노(furious) 역시 동의어이다(Georgotas, Cancro, 1988).

 오늘날 보면 멜랑꼴리아는 장기간의 고통스런 조건의 축적으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멜랑꼴리아의 심리적 기원은 Ephesus 출신의 소라누스(Soranus)에 의해서 더욱 정교화 되었다. 그는 심리 사회적 원인으로 생긴 분노, 야심, 애통함, 불안 때문이지 검은 쓸개즙 이론을 거부했다. 이후에 기원 후(A.D.) 2세기 경에 아르타쿠스(Aretacus)가 멜랑꼴리아가 의미 깊은 대인관계에서 생긴 심리적 요인에 의해서 생긴 질병이라고 진단하였다. 이후에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크레펠린(Kraepelin)이 울증을 정신분열증으로부터 분리 시켰다. 미국에서는 1904년에 정신과 의사인 아돌프 메이어(Adolf Meyer)가 우울증을 생리적인 원인에서 분리 시켜서 삶에서 연속적인 상처 이벤트들이 우울증의 원인으로 보았고 생리적인 원인으로 본 멜랑꼴리아에서 심리적 요인으로 발생한 우울증으로 의미를 바꾸어 놓았다. 신체적 질병의 개념에서 정신장애의 개념으로 심리적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신체적 요인보다는 개인의 심리적 요인이 우울증의 핵심으로 보게 된 것이다(Arieti, S., Bemporad, 1978).

 히포크라테스, 아레테우스, 소라누스 그리고 갈렌(Galen) 등의 조증과 멜랑꼴리의 임상 관찰은 정교했다. 그들은 우울증과 조증을 분리하지 않고 서로 같이 꼬인 병으로 보았다. 히포크라테스는 그의 저서 아포니즘(Aphonisms)애서 이 병이 봄에는 조증, 멜랑꼴리아로 분리되어 주고 나타나고 가을에는 조증과 멜랑꼴리아가 반복해서 나타난다고 썼다.

 조울증의 순환을 처음 기록한 사람은 아레테우스(Aretaeus)였다. 그는 우울증과 조증 사이에 관계를 알고 있었다. 우울증과 조증은 같은 장애의 서로 다른 면이다. 항우울제로는 아편의 부산물이 사용되었다. 쇼크 치료의 기원은 롭카스(Lopkas)라는 섬에 200m의 높이의 절벽에서 환자를 떨어뜨린 후 절벽 밑에 대기하고 있던 승려들이 구조해서 물에서 건져주었다. 많은 환자들이 회복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온천 수에 목욕을 하는 것은 오늘날 리디움(lithium) 치료약과 유사했다. 치료가 환자마다 증후군마다 개인화되어있다는 점이었다(Georgotas, Cancro, 1988).

 조울증과 감정 관계는 섹스피어의 멕베드. 리어왕, 햄릿 등의 작품에서 반영되었다. 엘리자베드 여왕 시대에 부르톤(Burton)의 멜랑꼴리아의 해부(anatomy of melancholia)는 유명하다. 그는 슬픔, 두려움, 불안 등이 원인임을 밝히고 있다. 오늘 날 언급되고 있는 죄의식을 제외하면 오늘 날의 분석과 유사하다(Georgotas, Cancro, 1988).

 우울증 요인은 모든 조증 환자에게서 나타난다. 어떤 조울증 환자는 조증 에피스도만 보이거나 어떤 환자는 단지 조증만 보인다. 조증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잇는 미침을 말한다. 보통 정신 이상자들을 우리는 "미쳤다"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조증 환자들을 말한다. 조증 환자는 혼자서 끊임없이 지껄이는 것이 특징이다. 옷을 입었는지 입지 않았는지에 관심이 없다. 분노, 공격, 흥분과 컨트롤 부족이 특징이다. 조증은 감정 장애에 속하며 핵심이 기분이 고조된다는 점이다.

 입원 비율이 5월에서 8월이 가장 많고 나이는 25세-45세가 가장 많았다. 공통적 원인으로는 가정적 위기, 애통, 혼란한 관계 등이 주요 원인으로 적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정신과 의사들은 망상적 멜랑꼴리아(Lype mania)로 주로 사용하고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영국의 정신과 의사들은 멜랑꼴리아를 주로 사용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우울증의 용어는 depression이라는 말이 주로 사용되고 멜랑꼴리아라는 말은 정신증적 우울증의 세부 단계에서 사용된다. 우울증 상태에서 조용한 정상 상태로 갔다가 조증으로 가는 환자보다 우울증에서 빨리 조증으로 가는 환자가 회복 비율이 빨랐다. 나이가 많을수록 조증 에피소드는 오래간다. 또 조증과 우울증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조증 환자와 약한 조증 환자들은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동 시에, 망상 시에, 과다 활동 시에는 환자는 자신이 그렇게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Georgotas, Cancro, 1988).

 현재 미국인 1천만-1천 4백만명이 감정 장애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미국인 10명 중에 1명이 자신의 삶에서 감정 장애와 관련된 심한 무두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세계 보건 기구(WHO)는 전 세계적으로 연간 우울증이 3%-5%인 1억의 인구가 고통을 받고 있음을 밝혔다.우울증은 "정신장애의 감기"라고 말한다. 최근의 세대에서 증가 추세에 있다. 하그넬(Hagnell, 1982)은 오늘 날을 멜랑꼴리아 시대(age of melancholia)라고 부르고 있다(Georgotas, Cancro, 1988).

 

참고 문헌

Ariet, S., Bemporad (1978). The Severe and Depression: psychotheraputic approach. N.Y.: Basic Books Inc.

Georgotas, Cancro (1988). Depression and Mania. N.Y.: Elsevier

Ogden, T. (2005). The Art of Psychoanalysis: Dreaming Undreamt Dreams and Interrupted Crisis. N.Y.: Reutledge